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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경쟁력 잃어가는데 … 최저임금 올라 가격 경쟁력마저 상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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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불 꺼지는 산업단지 

전문가들은 공단의 불이 꺼지는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제조 경쟁력 하락과 내수 부진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제조 경쟁력 하락이 기술과 가격 양 측면에서 모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기술 경쟁력이 압도적이면 인건비를 포함한 생산단가가 다소 높아도 국제무대에서 버텨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제조업은 기술이 탁월하지 않으면서 최저임금 등 인상으로 가격 경쟁력마저 상실했다는 의미다. 성 교수는 “현재 한국이 차별화된 부가가치를 보이는 독자 기술은 반도체뿐이고 나머지는 다 중국 등 후발 주자에 따라잡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본 ‘불꺼진 공단’ #“정부, 노동시장 개입 중단하고 #새 시장 창출할 신기술 지원을”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은 수출인데 국제경쟁력 추락으로 수출길이 막히자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이라며 “경제의 엔진이 꺼져가는데 이를 되살릴 정책은 보이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제조업은 보통 노동집약에서 자본집약, 기술집약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한국은 기술집약으로의 이행을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다수 영세한 중소기업은 월급을 최저임금에 맞춰 주는 형편”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상승은 중소기업 사업자에게 전 직원의 연봉을 30%씩 올려주게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발주자와 기술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비용 부담마저 늘어나니 공장을 돌려봤자 손해라는 생각에 문을 닫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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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경쟁력은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성태윤 교수는 “LCD 기술은 이미 중국이 앞섰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은 1년, 마지막 보루라 여기는 반도체 기술도 2년이 채 안 남았다는 게 산업계 중론”이라며 “주력산업을 대체할 신산업을 어떻게 키울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명현 교수도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있지만 한국은 클라우드·블록체인·인공지능 등 차세대 먹거리라 불리는 어떤 분야에서도 국제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미국·독일처럼 우리보다 인건비가 높으면서도 신산업으로 호황을 맞은 사례를 주목하라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아디다스 신발공장은 본사가 있는 독일에 신발에 특화한 3D프린터를 설치하고 로봇 위주의 공장을 설립했다. 이곳에서 소비자 맞춤형 신발을 하루 1350켤레씩 연간 50만 켤레 생산하는 게 목표다. 미국 아칸소주는 중국 봉제기업인 천원방직회사로부터 2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유치했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결합해 개인 맞춤형 신발과 티셔츠를 생산할 계획이다.

조명현 교수는 “큰 기업이 거액을 투자해 연쇄적으로 신산업을 일으키면 2, 3차 납품업체들이 많은 공단에도 일감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태 교수도 “정부가 인건비를 올리는 방식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중단하고, 기업이 로봇이나 인공지능 기술 등을 도입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소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지만 각종 규제와 강성 노조, 고임금, 법인세 인상 등으로 인해 경영 환경이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조 경쟁력 제고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내수 진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구인·구직 사이트인 사람인에서 기업 39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2.8%가 ‘불황을 체감한다’면서 경영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소비 부진에 따른 내수 위축’(29.4%)을 꼽았다. 이병태 교수는 “사회 전반에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소비를 줄이고 있다”며 “가계 가처분 소득 대비 소비 비중이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교수는 “투자가 혁신을 이끌고 혁신이 생산과 소득을 높여 소비까지 늘어나는 방식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가장 확실하게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서울·인천·천안·울산
박태희·박형수·임명수·신진호·최은경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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