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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학들 '평준화 병' 깊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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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프랑스 대학생들은 정부가 추진하던 새 고용관계법을 무력화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다니는 대학교는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지적했다. 신문은 파리에 있는 '파리 제10대학' 낭테르 캠퍼스의 실태를 현장보도하면서 프랑스 대학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 불 꺼진 캠퍼스=낭테르 캠퍼스 재학생은 3만2000명에 이르지만 이곳엔 그 흔한 학생회관이나 학생신문.체육시설이 없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없으며, 학교 식당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는다. 48만 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은 하루 10시간만 이용할 수 있으며 일요일과 휴일엔 문도 열지 않는다. 상당수 교수는 연구실도 없다. 다른 파리 대학들도 낭테르 캠퍼스보다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 대학도 평준화=프랑스에서는 고교졸업시험(바칼로레아)만 통과하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다. 대학이 평준화돼 서로 격차가 거의 없다. 대부분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다닌다.

1968년 학생운동 이후 "공부는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대학 진학생이 급격히 늘어났다. 반면 학위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졌다. 국가가 강의실이나 연구시설.교수진 등 대학 운영에 필요한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교육이 부실해졌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에 투입되는 정부 재정은 학생 1인당 연간 약 8500달러(약 800만원)로, 고교생 1인당 투입 재정보다 40%나 적다. 수업료는 연간 약 250달러로 대학 재정에 거의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려달라며 매년 시위를 벌인다. 교수들의 보수도 낮은 수준이다. 초임 교수는 연간 2만 달러 정도 받으며, 중견 교수도 연간 7만5000 달러를 받는 데 그친다.

대학 개혁을 추진했다가 학교 측의 반대로 결국 실패한 클로드 알레그레 전 교육장관은 "이런 풍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세대의 교육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소르본대엔 유령 학생도=심지어 소르본 대학(파리 4대학)의 일부 비인기 학과의 경우 재학생의 10~20%는 등록만 한 뒤 학교에는 나오지 않는 '유령 학생'이라고 일간 르피가로가 13일 보도했다. 유령 학생들은 기업연수생이 되는 데 필요한 자격을 얻거나 사회보장 혜택, 교통.영화 요금 할인혜택 등을 받기 위해 등록만 한 뒤 강의는 전혀 듣지 않고 있다.

◆ 학위 가치 떨어져 불안=학생들은 대학에서 실제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경쟁력 있고 질 높은 교육을 받지 못해 졸업 뒤 일자리를 쉽게 찾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유 있는 가정 출신의 학생들은 외국 대학이나 프랑스 내 사립 특수전문 대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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