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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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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부동산 가격은 10·29대책 이전 수준으로, 지금보다 20~30%가량 내려갈 것이다.” 2006년 5월 17일 당시 김용민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이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홍종학입니다’에 출연해 내놓은 발언이다. 10·29대책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게 만들겠다”면서 종합부동산세를 전격적으로 도입한 역대 최강의 주택 수요억제 정책이었다. 이어 2005년 8·31대책은 종부세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수요를 억제할수록 부동산은 투기판으로 바뀌었고, 노무현 정부 집권 5년간 전국 집값 상승률은 63.58%를 기록했다.

요즘 또다시 부동산 불패신화가 돌아왔다. 한 달 만에 1억원이 오른 곳이 속출할 만큼 고공행진이다. 서울 강남·서초·송파 지역뿐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통개발하겠다”고 찍은 여의도·용산을 비롯해 강북 지역까지 달아올랐다. ‘강남불패’를 넘어 ‘서울불패’가 회자되는 이유다. 치솟는 집값에 놀란 박 시장이 개발 연기를 선언했지만 시장 열기가 가라앉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데자뷔가 보인다. 집값 잡겠다고 해놓고 집값만 올려놓는 모순 말이다.

이런 혼란은 집값은 시장의 수급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끝없이 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더 좋은 주택을 찾는다. 이 흐름을 막는 것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가로막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집값을 잡겠다”며 시장에 손을 댄다.

결과는 거꾸로다. 중과세를 비롯해 대출·전매 억제 같은 규제가 강화될수록 되레 주택의 희소성을 높여 집값을 자극한다. 강남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억~5억원씩 뛴 아파트가 속출하고 강북에도 10억원대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가 등장하고 있는 이유다. 규제의 역습이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경험했던 결과일 뿐 아니라 경제의 수급 원리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이번에도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되고 있다. 박 시장이 계획을 철회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수요억제책은 집값에 기름을 부을 수밖에 없다. 시장을 이기려는 객기가 잠자던 부동산 불패신화를 불러낸 셈이다. 내 집 마련을 미루던 서민들만 울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이것만 기억하자. ‘역대 어느 정부도 시장을 이긴 적은 없다’. 시장 흐름을 꺾는 것은 경제위기와 고금리 정도밖에 없다. 안정적인 공급 확대는 놔두고 세금과 규제로는 집값을 안정시킬 수 없다. 그런데도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정부를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 뿐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