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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변 못 가리고 짖는다고 … 멀쩡한 강아지도 안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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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기견보호소의 철제 케이지에 유기견이 갇혀있다. [중앙포토]

유기견보호소의 철제 케이지에 유기견이 갇혀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중앙포토]

직장인 윤모(33·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올해 2월 15살이던 반려견 ‘포비’를 안락사시켰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10살 넘어가면서부터 노화가 시작된 포비는 13살 때부터 심장병을 앓으면서 밥을 잘 못 먹고 거동도 불편해했다. 윤씨는 “처음에는 안락사를 시킬 생각도 못 했지만 한두 달 동안 숨을 제대로 못 쉬고 고통스러워해 안락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주인 마음대로 반려견 안락사 심각 #견주 소유물로 여겨 쉽게 선택 #병 없어도 요구, 안 되면 버려 #‘안락사는 최후수단’ 기준 정해야

반려견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아직도 윤씨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남아있다. 윤씨는 “사람과 달리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수 없으니 안락사라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며 “고통을 덜어줬다고, 포비도 그것을 원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한다”고 털어놨다.

윤씨처럼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려동물 안락사는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수의사 판단에 따라 시행한다. 보통 반려동물이 치매나 홍역 등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을 연장하는 게 고통스러울 때 실시한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중랑구 한 동물병원의 수의사는 “연장치료가 의미가 없고 반려동물이 살아 있는 게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것으로 판단할 때 보호자에게 권유한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동의 의사를 밝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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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물 안락사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아프거나 사람을 물어 다치게 하는 반려동물뿐 아니라 건강한데도 사람의 필요와 편의 때문에 안락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영민 서울시수의사회장은 “어리고 건강한데도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심하게 짖는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기 때문에 보호자들도 막무가내”라며 “결국 이런 사람들이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가 안락사가 안 되면 동물을 버린다”고 말했다. 현행법으론 반려동물을 건강한 상태에서 안락사 시켜도 이를 막거나 제재할 법적 장치는 없다. 동물권연구단체 PNR의 이혜윤 이사(변호사)는 “민법상 개는 견주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생사여탈권이 모두 보호자에게 있다”며 “현행법상 잔인하게 죽이는 것만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건강한 강아지를 안락사 시킨 사실을 알아내 신고해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안락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동물은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 민간보험도 미미한 수준이라 질병이 발생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14살짜리 반려견을 기르고 있는 김지연(36·서울 면목동)씨는 “얼마 전 강아지의 치주염과 췌장염 등을 치료하는데 100만원이 넘게 들었다”며 “사실 반려견을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고비용을 감당하면서 키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이 유실·유기되는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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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려동물 안락사에 대한 실태조사도 따로 이뤄지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집이 2012년 359만 가구에서 지난해 593만 가구로 60% 넘게 늘었지만, 이들의 죽음에 대한 통계는 없다. 이승환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팀 사무관은 “반려동물 실태 조사는 2년마다 하지만 안락사 조사는 따로 하지 않는다. 조사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이뤄질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안락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봉 이리온동물병원 대표원장은 “어떤 병에 대해서 안락사를 시킬 수 있다거나, 문제 행동을 보이는 반려동물은 행동교정을 실시한 후에 최후의 수단으로 안락사를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생명체로 존중하는 인식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기상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 주무관(수의사)은 “여전히 반려동물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려동물을 키울 때는 반드시 의무교육을 받게 하고 동물등록제를 활성화해 유기되는 동물 수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민희·홍지유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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