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된 시위풍토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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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에 내무부가 이른바 집단사태를 평화적 집단 의사표시로서의 시위와 폭력행위로 엄격히 구분해 대처하고 최류탄 사용도 기준에 따라 제한 사용키로 한 것은 진작 했어야할 조치였다. 더구나 옥외집회나 시위는 준수사항을 이행할 경우 최대로 보호하고 진정이나 호소를 위한 집회는 일정한 장소로 유도, 효과를 높이도록 하는 등 건전한 시위로 집단행동을 유도키로 한 것 역시 바람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정부가 취해온 집단사태 대처방식은 봉쇄와 진압만 있었지 유도나 보호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6·25이후 평화적 시위를 몇 차례 용인하거나 유도하는 노력이 있긴 했어도 무차별 진압과 원천봉쇄가 능사처럼 되어왔다. 단 몇 사람이 모여 구호를 외쳐도 잡아들이고 굳이 최류탄을 발사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무절제하게 남발하는 사례도 허다했다.
시위가 한풀 꺾이고 스스로 물러나는 학생들에게도 최루탄을 발사해 부상을 입히거나 경찰의 과잉진압이 과격한 시위를 자초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내무부가 늦게나마 최루탄 사용기준을 마련, 시위군중이 화염병이나 각목·쇠파이프 등을 사용하고 인질·방화 등 다른 수단으로는 진압이 어려운 긴급한 사태에 한해 선별사용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평화적이고 성숙된 시위관행을 정착시키는 것도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폭력을 동반한 요즘의 격렬한 시위양상을 보면 여간 심각하지 않다. 시위가 단순한 의사표시의 단계를 넘는 경우가 많고 점거농성과 방화, 인질과 삭발 등 집단행동이 날로 폭력화하고 있다. 정당한 의사표시 방편으로서의 집회와 시위가 심히 왜곡되어있는 상태다.
이제 시위도 민주화 시대에 맞게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테두리에서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세련된 표현방법으로 성숙돼야 할 때가 되었다. 지난날의 권력폭력 대신 새로 등장한 폭력이 횡행한다면 이것 또한 민주화의 장애가 아닐 수 없다.
폭력·불법시위에 대해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앞서 대통령 담화에서 밝혔지만 그것만으로 폭력시위가 근절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중증의 환자는 대중요법으로 근본 치료가 안되듯이 중증의 폭력 시외 풍조에 대해서는 원인을 제거하는 정치와 정책을 포함한 제반조치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건전한 시위풍토가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부터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 이 법률은 말만 신고제이지 사실상 허가제나 다름없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지나치게 많다. 자유 민주주의국가에서 집회와 시위 등 이른바 표현의 자유에 허가제란 있을 수 없고 다만 행정기관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신고제만 둘 수 있다.
이처럼 행정 편의를 위해 신고를 받도록 되어있는 사항을 허가제처럼 운영하는 것은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 더구나 집회나 시위는「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때만 제약을 할 수 있는데도 당국이 막연히 위험하다고 판단할 때도 이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한 집시법은 명백한 헌법위배다.
집시법개정의 필요성은 여야가 다같이 인정하고 개정을 추진중이지만 정부가 건전한 시위를 보호하고 성숙한 시위문화를 조성키 위해서는 관계법 정비와 제도적인 정지작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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