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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가 멈춰선 곳, 세상 끝이거나 최초 도시거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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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호 20면

아르메니아 호르비랍 수도원 뒤로 우뚝 솟아있는 아라라트산이 보인다. 사진 이종원

아르메니아 호르비랍 수도원 뒤로 우뚝 솟아있는 아라라트산이 보인다. 사진 이종원

 아르메니아는 터키 오른편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다. 인구는 300만 명에 불과하고, 크기(2만9743㎢)는 우리의 경상도만 하다. 한데 이름도 낯선 이 이국의 땅은 한국과 묘하게 닮았다. 강대국에 둘려 있어 외세의 침입이 잦았다는 역사도 그렇거니와, 국토 대부분이 산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그렇다. 우리가 한글과 한국어를 갖고 있듯이 아르메니아 역시 고유 문자와 언어를 쓴다. 작지만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나라 아르메니아를 다녀왔다.

터키 동쪽의 작은 나라 아르메니아 #성경에 나오는 아라라트산의 고장 #유네스코 등재된 기독교 유적 가득 #예수 찌른 창 전시하는 성당도 있어

 인류 첫 번째 도시

계단식 공원캐스케이드. 예레반의 랜드 마크다. 사진 이종원

계단식 공원캐스케이드. 예레반의 랜드 마크다. 사진 이종원

 아르메니아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했다. 수도 예레반(Yerevan)의 랜드 마크라 할 수 있는 계단식 공원 ‘캐스케이드’에서 이 땅이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캐스케이드 꼭대기에 오르면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공화국 창건 50주년 기념탑’이 보인다.
 기념탑 앞에 서면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아라라트산(5185m)을 마주하게 된다. 아라라트산은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던 곳으로 알려진 전설의 산이다. 성경에 따르면 신이 인간 세상을 벌하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켰는데, 노아의 가족만 방주에 올라 화를 면했다. 홍수가 잦아든 뒤 노아가 땅을 발견하고 “예레바츠(찾아냈다)!”라고 외쳤으며, 그에 따라 예레반이라는 도시 이름도 탄생했다고 아르메이나인은 믿는다. 아르메니아가 예레반을 인류의 첫 번째 도시라고 소개하는 까닭이다.

예레반에서 바라보는 아라라트산. 사진 이종원

예레반에서 바라보는 아라라트산. 사진 이종원

 아라라트산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은 예레반에서 남쪽으로 30분쯤 떨어져 있는 ‘호르비랍 수도원’이다.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그레고리(257~331)가 13년간 감금되었던 지하 감옥 위에 세운 교회다. 아르메니아의 왕 티리다테스 3세는 중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공주의 꿈에 나타난 성 그레고리가 자신을 고쳐줬다고 믿었다. 이에 감복한 왕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수도원에서는 아라라트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그러나 아라라트산은 현재 이슬람 국가인 터키 영토다. 터키는 아르메니아의 오랜 앙숙으로 양국 사이의 국경은 봉쇄됐다. 아르메니아는 터키 전신인 오스만 제국 시절 자국민 약 150만 명이 집단 학살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터키는 대규모 학살을 부정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은 닿을 수 없는 땅에 솟은 자신들의 성산(聖山)을 바라보고만 있다.

노아의 방주 파편 간직한 성당

바위산을 깎아 완성한 게하르트 수도원. 사진 이종원

바위산을 깎아 완성한 게하르트 수도원. 사진 이종원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다 보니 나라 곳곳에 연륜 깊은 수도원과 교회가 많다. 그러나 여행객에게 입장료를 요구하는 수도원이나 교회는 없다.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인이 공부하고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누구에게나 열린 기도 공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아르메니아에서 첫 손에 꼽히는 성지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물을 갖고 있어서다. 대성당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로마 병사가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예수의 옆구리를 찌를 때 썼다는 ‘롱기누스의 창’과 아라라트산에서 가져온 노아의 방주 파편이 전시돼 있다. 유물의 진위를 두고 논란이 있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성물(聖物)로 취급받는다.

에치미아진 대성당에 전시돼 있는 롱기루스의 창. 사진 이종원

에치미아진 대성당에 전시돼 있는 롱기루스의 창. 사진 이종원

 성 그레고리가 성스러운 샘물을 발견했다는 예레반 동쪽에 ‘게하르트 수도원’이 있다. 기독교인은 깎아지는 절벽 아래에 굴을 파 돔과 아치를 만들고 십자가 부조를 깎아 수도원을 완성했다. 지금은 수도원과 바위산이 한 몸처럼 보인다. 인공조명 대신에 천장 돔에서 내려오는 빛줄기가 성당을 밝힌다. 유럽의 유명한 수도원처럼 하늘을 찌르는 첨탑이 달렸거나 화려한 벽화가 그려진 건 아니었지만,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 수도원이었다.

아자트 계곡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사진 이종원

아자트 계곡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사진 이종원

 그리스 아테네 신전의 축소판인 ‘가르니 사원’은 태양신을 모시기 위해 1세기 만들어졌다. 17세기 지진에 붕괴한 것을 소련 시절 고고학자가 복원했는데, 특히 이오니아식 기둥이 볼 만하다. 가르니 사원 아래쪽 아자트 계곡으로 내려가면 세계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차가운 바다나 강을 만나면서 급격히 식어 생성된 지형을 말한다. 그러나 일대에는 바다가 없다. 작은 개울만 흐르는 땅에 우뚝 솟은 대형 주상절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 옛날 이곳이 바다였음을 추정할 뿐이다.

여행정보

아르메니아까지 닿는 직항은 없다. 보통 러시아나 카타르를 경유해 예레반으로 들어간다. 한국 여권 소지자는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고, 180일 체류할 수 있다. 공식 화폐는 드람(1드람 약 2원50전). 1000드람이면 시내에서 케밥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 예레반 시내 투어는 걷기 여행으로 가능하며, 근교로 나가려면 예레반 공화국 광장에서 관광택시를 대절하거나 현지여행사 투어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아르메니아관광청(armenia.travel) 참조.

이종원 여행작가 ljhkhs44@hanmail.net
소설보다 재미있는 여행지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빈다. 『한국인에게 더 특별한 세계여행지』 『대한민국 숨겨진 여행지 100』 등을 펴냈다. 현재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이며 여행동호회 ‘모놀과정수’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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