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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함께 北 가는 비건… 거친 협상 전문 포드 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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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다음 주 초 북한을 네 번째 방문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방북 사실을 전하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북한행에 동행할 인물을 깜짝 발표했다.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로 새롭게 임명된 스티븐 비건(55) 포드자동차 부회장이다.

신임 미국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된 스티븐 비건 포드자동차 부회장. [EPA=연합뉴스]

신임 미국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된 스티븐 비건 포드자동차 부회장. [EPA=연합뉴스]

비건 부회장은 앞으로 지난 2월 은퇴한 조셉 윤 전 대북특별대표의 뒤를 이어 북한과의 실무 협상을 이끌어가게 된다. 그동안 공석으로 있던 대북특별대표를 전격 임명한 것은 미국이 확실한 조직과 체제를 갖춰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워싱턴 정가의 대표적 외교안보 전문가 #자동차 회사 임원으로 다양한 협상 경험 #미국, 협상 장기화 대비해 조직 완비

비건은 23일 회견에서 “이 일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이슈들이 쉽지 않고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험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동의한 사안”이라며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를 강조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워싱턴 정가의 외교·안보 분야에서 활약해 온 미국 보수 진영의 대표 인사다. 미시간대에서 러시아 문학과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비건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1기 행정부(2001~2005년)에서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도와 NSC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했다.

빌 프리스트 전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하며 북한 문제에 관여해 왔고, 2008년엔 존 매케인 선거 캠프에서 외교 자문역을 맡았다. 지난 3월 물러난 허버트 맥매스터 전 NSC 보좌관의 후임으로도 유력하게 거론된 바 있다.

포드에서는 국제담당 부회장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슈 등에서 미국 자동차업계 목소리를 대변했다.

지난 23일 스티브 비건 포드 부회장(왼쪽)을 대북 특사에 임명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지난 23일 스티브 비건 포드 부회장(왼쪽)을 대북 특사에 임명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대 러시아 외교가 전문 분야지만 북한 문제에도 오랫동안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23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비건 대표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결과물인 ‘제네바 합의’와 관련해 1990년대 말부터 깊이 관여해 북핵 문제에 정통하다”고 밝혔다.

자누지 대표는 또 “비건 대표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나와 함께 ‘제네바합의’ 이행을 위해 일했다”며 “부시 전 대통령 가까이에서 북한 문제를 다룬 매우 똑똑하고, 경험도 많고, 명석한 판단력(clear-eyed)을 가진 안보 전문가다. 힘든 시기에 대북정책 특별대표직을 잘 수행할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발탁에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의 고위급 임원으로 각종 협상에서 활약했던 경험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비건의) 대북 경험이 적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비건은 훌륭한 적임자”라며 “비건은 포드차에서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전 세계에 걸쳐 협상을 해왔고 이번 (대북협상) 업무에도 기술과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비건 대표를 “거친 협상 환경(tough negotiating settings)에도 폭넓은 경력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이 폼페이오의 4차 방북에 앞서 대북특별대표로 비건을 지명, 동행시키는 건 ‘북·미 협상의 장기화’를 대비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협상을 책임질 인물을 북한에 소개하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3일 “폼페이오는 비건 부회장에게 매일 벌어질(day-to-day) 북한 비핵화 협상을 맡기겠다고 밝혔다”며 “지난 4월부터 폼페이오 장관은 세 차례에 걸쳐 방북했지만 (비핵화 협상이) 뚜렷히 진전됐다는 신호는 드물게 나타났다”고 평했다.

다음 주 방북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특별대사는 미국이 북측에 요구한 핵시설 리스트 제출, 그리고 북한이 요구한 종전선언을 두고 최종 합의점을 찾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북에서 양측의 ‘빅딜’이 이뤄진다면 다음 달 유엔총회 기간 중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편 포드자동차는 23일 홈페이지를 통해 “무역전략과 정치리스크 관리를 비롯해 포드의 해외정부 관계를 총괄했던 비건 부회장이 8월 31일자로 퇴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이영희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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