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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옥탑방 시장님’이 답해야 할 질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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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이 정도면 미쳤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서울 부동산 시장 말이다. 눈 떠 보니 억 단위로 올라 있는 건 예사다. 위약금까지 물어주고 계약된 물건을 거둬들이는 집주인까지 생겼다. 집값 잡겠다는 정부 말을 믿고 집 구매를 미뤘거나 팔아 버린 사람들은 가슴을 친다. 무능한 정부를 원망할 기운조차 없다. 이런 정부를 믿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할 뿐이다.

집값 들쑤신 대규모 개발 계획 #서민 내세운 시정 철학과 모순

그 와중에 옥탑방 시장님이 불을 질렀다. ‘용산·여의도 통합개발’과 ‘강북 우선 투자론’이 불쏘시개가 됐다. 몇 달째 안 팔리던 아파트가 박원순 시장의 발표 다음날 바로 팔리더라는 강북 부동산업자의 목소리가 들떠 있다. 기껏 동네 고치기 정도의 소규모 개발에 집중하던 박 시장이 ‘토건 시장’으로 변신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대권을 의식한 업적 쌓기라는 의구심은 당연하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3선에 성공한 정치인이 더 큰 꿈을 꾸는 것을 두고 뭐랄 수는 없다. 그러나 박 시장의 변신에는 몇 가지 답할 게 있어 보인다.

우선, 왜 하필 이 타이밍인가. 지금 서울 아파트 시장은 보유세 인상, 투기 단속, 금리 인상 예상 등 악재는 눈에 안 들어온다. 반대로 무슨 ‘개발’ 소리만 들리면 바로 호재로 삼아 반응한다. 이런 판에 서울시장이 들고나온 개발론만큼 솔깃한 소식이 없다. 3선을 거치며 노련한 정치가의 면모를 풍기는 박 시장이 이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무책임이다. 중앙정부와의 정책 엇박자야 그렇다 치자. 서민 지향이라는 그의 시정 철학까지 의심받는다. 강남·용산·여의도 같은 부자 동네 진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면서 강북에 희망을 걸던 무주택자들의 꿈은 아스라이 부서지고 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엔 “우리에겐 경전철 개통보다 멀어져 버린 내 집 마련 꿈이 더 와닿는다”는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두 번째 질문. 강남·북의 격차 해소는 당연한 과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박 시장의 발표문 어디에도 세입자나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단어는 없었다. 도시 개발로 건물주나 집주인의 재산은 늘어나지만 상가 세입자는 오히려 피해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홍대·삼청동·서촌·연남동·해방촌 등에서 너무나 익숙해진 풍경이다. 주거 문제도 마찬가지다. 박 시장의 강북 개발은 옥탑방 세입자가 아니라 옥탑방 집주인을 겨냥한 것이다. 집주인의 자산 증식 욕구엔 주목했지만 25만 가구에 이르는 서울 시내 옥탑방과 지하방 주민들의 불안은 보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특히 민간 자본이 아닌 공공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더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서울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AT커니가 평가한 서울의 10년 뒤 성장 잠재력은 2015년 10위에서 지난해 38위로 떨어졌다. 역시 글로벌 컨설팅 그룹인 머서(MERCER)가 올해 발표한 ‘삶의 질’ 순위에선 세계 230개 도시 중 79위에 그쳤다. 시민의 삶을 강조하는 박 시장으로선 곤혹스러운 결과다. 미래의 글로벌 경쟁은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도시 단위로 이뤄진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동북아시아만 하더라도 서울은 베이징·상하이·홍콩·도쿄와 허브 도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높은 집값과 일자리 감소가 겹치면서 젊은 층이 서울을 떠나고 있다. 박 시장의 서울 개발 전략이 이런 상황을 타개해 시민들에게 희망을 돌려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똑 부러진 답이 있을진 모르겠다. 그러나 고민의 흔적조차 없다면 ‘시장(市長)의 욕망’이 ‘욕망의 시장(市場)’에 편승했다는 시선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