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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청와대가 금리 얘긴 왜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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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매파 중앙은행 총재를 좋아하는 대통령은 없다. 경제 성과를 자랑하려는 리더는 특히 그렇다. 금리가 낮아야 돈을 빌리기 쉽고, 소비·투자가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며칠 전 대놓고 비난했다. “파월을 잘못 봤다. 나는 그의 금리 인상이 달갑지 않다”고 했다. 중앙은행 총재라고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 거스르고 싶겠나. 그렇다고 금리를 안 올렸다가, 경제가 과열되면 충격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인플레 파이터’야말로 중앙은행 총재의 본업이다.

경제 체력 망가뜨려 놓고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닌가

한국은행 총재의 업무엔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막는 것이다. 한국은 중규모 개방 경제다. 걸핏하면 돈이 빠져나간다.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아질 때, 신흥국 위기가 불거질 때 특히 그렇다. 오죽하면 국제 시장의 자동현금출납기(ATM)로 불리겠나. 올 들어 미국 금리는 한국보다 0.5%포인트 높아졌다. 터키로 번진 신흥국 위기는 진행형이다. 미·중 무역 전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은은 올해 금리를 못 올리고 있다. 경제 체력이 안 돼서다. 경제가 쪼그라들고 고용 쇼크가 이렇게 크지 않았다면 한은은 진작 금리를 올렸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 다음 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주 확인된 최저임금발 고용 쇼크는 그런 가능성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시장에선 “8월 인상은커녕 연내 인상도 물 건너갔다”는 말이 나온다.

한술 더 떠 21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더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정책을 써야 한다”며 금리 동결을 압박했다. 한은이 금리도 못 올릴 만큼 허약한 경제를 만들어 놓고 경제를 생각하라며 되레 큰소리니,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 바람에 이날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하락했다. 3년짜리는 1.919%로 연중 최저를 기록했다. 시장에선 한은이 청와대의 뜻을 거슬러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주열 한은 총재가 결기를 보여줬으면 한다. 금리를 올려야 한다. 그것도 이달 중에. 10월이면 늦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경제 주체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 늦을수록 피해가 커진다. 미국은 이미 9월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놔두면 한·미 금리 차이가 0.75%포인트로 벌어질 수 있다. A 은행장은 “0.75%포인트 차이는 오래 감당할 수 없다. 자칫 외자 이탈이 시작되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은 11월에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 2006년 5~7월 한·미 기준금리가 1%포인트 차이로 역전되자 월평균 2조7000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당시 미국 기준 금리는 5%대였지만 지금은 2%대다. 금리 차이에 대한 민감도가 커진 만큼 시장 충격도 더 클 것이다.

둘째, 근거 없는 낙관론을 잠재울 수 있다.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 경제는 긴축 기조로 돌아설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고 장하성 실장은 “연말에는 나아질 것이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더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정치 말고 시장과 소통해야 한다. 지난달 금통위는 ‘금리 인상’ 소수 의견을 냈다. 한은은 그간 소수 의견이 나온 뒤 한두 달 내 금리를 올려왔다. 이번에도 그래야 한은이 “오로지 시장과 경제만 본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정치도, 청와대도 잊어라.

게다가 이번에도 금리를 못 올리면 밖에서는 한국 경제의 체력을 의심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충격에 올려야 할 금리를 못 올릴 정도로 허약하다고 여길 수 있다. 파월이 그랬듯, 이주열 총재에게도 여러모로 골치 아픈 선택이 될 것이다. 중앙은행 총재 하기도 참 어려운 시대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