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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도' 사장님 … 직원에 허리 숙여 인사하고 존대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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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사진=변선구 기자]

한국엔 '회장님'이 넘쳐난다. 어지간한 규모의 중소기업 오너들이라면 '회장' 명함을 파는 게 보통이다. 그래야 오너 권위가 선다고들 믿는다. 이런 점에서 ㈜삼구개발 구자관(62.사진) 사장의 명함은 특이했다. 그는 자신을 '책임대표사원'으로 소개했다.

구 사장은 "자기는 책임을 지는 사원일 뿐 군림하는 위치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왜 자신을 사원급으로 낮추는 걸까. 실제로 그는 출근과 동시에 마주치는 경비든, 청소 아주머니든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다. 업무 때문에 대리.주임급 직원을 찾을 때에도 "OOO 대리님 계시냐"고 말한다.

구 사장은 "우리 회사를 있게 한 그분들을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장이든, 본사 임직원이든, 현장 직원이든 업무가 다를 뿐 동등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1976년 구 사장은 2명의 직원과 함께 청소 용역 일을 시작했다. 현재 삼구개발은 53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국내 굴지의 아웃소싱(인력파견) 회사로 성장했다. 경비.청소 이외에도 시설관리, 호텔 및 병원관리, 단체급식 사업 등에도 진출했다. 신도리코.신세계푸드.SK.대한항공.율촌화학 등 대기업과 수년간 장기계약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 대기업그룹 계열 회사를 제외하면 청소.경비 분야에서 국내 수위권 회사에 속한다. 지난해 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800억원. 순익은 매출의 1%를 넘지 않을 정도로 박한 편이다.

매출의 대부분이 급여로 나가는 사업 구조 때문이다. 그는 파견직원을 흔히 비정규직이라고 부르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5300여 명의 파견 직원은 삼구개발의 정규직 사원들입니다. 4대 사회보험에 들어 있고, 상여.퇴직금도 규정대로 지급하고 있어요.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576명에 이릅니다."

15일 창립 30주년을 맞는 구 사장은 "다른 아웃소싱 업체는 사장이 영업하지만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영업하는 회사"라고 말했다. 로비와 청탁이 난무하는 용역업계에서 삼구개발처럼 '배경없는' 회사가 성장해온 것은 직원들의 성실성 덕분이라는 것이다. 구 사장은 2004년 용인대 경찰행정학과에 입학,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됐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했던 그는 어린 나이에 '아이스케키' 장사,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다 천막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검정고시로 서울 용문고에 들어가 고교 과정을 간신히 마쳤다.

"오리엔테이션.MT 같은 학교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저를'큰 형, 큰 오빠'로 부릅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있으면 저도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삼구개발의 1인당 1년 매출을 따져보면 1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본사 관리비 등을 감안하면 현장 직원 월급이 평균 100만원이 채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경비.청소 직원들의 월 급여는 70만~80만원 정도라고 한다. 구 사장은 "우리 직원들은 넉넉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부자라고 믿습니다. 이들을 위해 작은 평수의 무료 임대주택이라도 마련해 주는 게 제 꿈입니다."

글=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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