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린이들 ‘서커스 매스게임’ 올 9·9절엔 못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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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이 2008년 북한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아 진행했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당시 어린이들도 공연에 참여했다. [정용수 기자]

북한 당국이 2008년 북한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아 진행했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당시 어린이들도 공연에 참여했다. [정용수 기자]

북한이 다음달 9일 정권수립기념일을 맞아 개막하는 예술공연 때 유소년을 동원하지 않기로 했다고 대북 소식통이 20일 전했다. 한국에선 한때 아리랑 공연으로 알려졌던 북한의 공연은 공식 명칭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다. 대규모 인원이 출연해 관람석에선 일사불란한 매스게임을 보여주고, 운동장에선 집단체조를 선보여 북한 내부적으론 주민들을 결속하고 바깥에는 북한 체제의 강고함을 과시하는 공연이다.

국제사회 ‘아동학대 비판’ 의식 #유치원·초등생 행사 동원 안해 #올해 행사 특등석 가격 103만원 #20회 공연 128억 외화벌이 나서

이 소식통은 “2002년 시작해 2013년까지 간헐적으로 진행했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에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유소년도 출연했다”며 “하지만 올해는 중학생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올해 공연을 9·9절(북한 정권수립기념일)인 다음달 9일 시작해 9월 말까지 진행한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북한은 올해 공연 주제를 ‘빛나는 조국’으로 정하고 수만 명의 청년과 학생을 동원해 준비 중이다. 5장(章) 13경(景)으로 구성된 2008년 공연에서 북한은 ‘활짝 피여(어)라’라는 코너에 6~7세가량의 남녀 어린이 수백 명을 출연시켰다. 어린이들은 일사불란하게 두 다리를 벌린 뒤 가슴을 땅에 붙이거나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등 서커스에 가까운 ‘고난도 묘기’를 선보였다. 당시 북한 관계자는 “평양 시내 곳곳의 어린이들을 모아 별도로 수개월간 연습했다”고 말했다.

이 장면을 본 서방 관계자들 일부가 아동 학대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올해 공연에서 어린이들을 제외한 건 그간 집단체조와 공연을 놓고 제기됐던 국제사회의 지적을 염두에 뒀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은 “과거 북한은 ‘우리 식’이라며 국제사회의 시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국제사회의 기준이나 외부의 비판을 이전보다는 더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은 15만 명을 수용하는 능라도의 ‘5월 1일 경기장’에서 진행한다. 관람석 맞은편 스탠드에서 5만 명가량의 학생이 카드섹션을 하고, 운동장에서 각종 공연을 펼치는 북한 스타일의 매스게임이다.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해 이를 관람(당시 공연명 ‘백전백승 조선로동당’)한 적이 있다. 그때 북한은 올브라이트를 앉혀놓고 미사일이 날아가 폭발하는 장면을 카드섹션으로 보여줬다. 2007년에 이어 2008년 정부 수립 60주년 공연 때는 10만 명이 동원돼 ‘단일 공연 최대 인원 참가’ 분야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북한은 올해 공연 일정을 자체 웹사이트에 올려 홍보하며 해외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는 10년 전에 비해 입장료를 평균 3.3배 인상해 대북제재 속에서 합법적인 외화 수입을 올리려는 의도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공개한 입장권 가격은 특등석 800유로(103만원), 1등석 500유로(64만원)다. 2등석과 3등석은 각각 300유로(39만원)와 100유로(13만원)다. 2008년엔 특등석 300달러(265유로), 1등석 150달러(132유로), 2등석 100달러(88유로), 3등석 50달러(44유로)였다. 특등석 3배, 1등석 3.78배, 2등석 3.4배, 3등석은 2.27배로 3배 안팎을 인상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서 관광은 예외”라며 “북한이 관람료를 올려 외화 수입을 만회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올해는 20회가량 공연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전 공연 때 특등석 60석, 1등석 500석, 2등석과 3등석이 각각 800석이었다. 이들 자리 규모를 기준으로 이 중 80%를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북한은 올해 한 차례 공연에 49만4400유로(약6억3500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20회 공연에 약 1000만 유로(128억여원)가량을 벌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온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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