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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통 영국 그릇 회사가 밥공기 만든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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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덴비 CEO 세바스티안 라젤 인터뷰
그릇은 그 나라의 식문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릇 모양이나 색깔이 달라진다. 예컨대 밥과 국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 반찬을 함께 먹는 우리는 오목한 밥그릇·국그릇과 반찬을 담는 크고 작은 접시들을 주로 사용한다. 반면 유럽·미주처럼 한 가지 요리를 메인으로 해서 감자나 야채 등을 약간씩 곁들여 먹는 나라의 그릇은 편편하고 큰 접시가 주다. 그릇 회사가 다른 나라에 진출할 때 그 나라의 식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200년 역사의 유명 영국 테이블웨어 브랜드 ‘덴비’는 2012년 한국에 진출하면서 작은 볼(bowl) 형태의 밥그릇을 개발했다. 한국의 식문화를 세심하게 공부한 결과다. 최근 서울을 찾은 덴비의 세바스티안 라젤 CEO를 만났다.

200년 역사를 가진 영국 1위 프리미엄 테이블 웨어 브렌드 '덴비'의 세바스티안 라젤 CEO는 "현지화는 덴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장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덴비는 한국에 진출하면서 오목한 형태의 밥그릇을 선보여 한국에서만 1년에 200만 개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컵은 한정판으로 내놓은 제품이다. 최정동 기자

200년 역사를 가진 영국 1위 프리미엄 테이블 웨어 브렌드 '덴비'의 세바스티안 라젤 CEO는 "현지화는 덴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장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덴비는 한국에 진출하면서 오목한 형태의 밥그릇을 선보여 한국에서만 1년에 200만 개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컵은 한정판으로 내놓은 제품이다. 최정동 기자

영국 브랜드가 한국형 그릇을 만들었다는 게 반가웠다.
"덴비가 진출한 미국·호주·홍콩 등 50여 개 해외 국가 중 한국의 매출 규모가 가장 크다. 그만큼 중요한 한국 시장에 맞춘 새로운 제품이 필요했다. 한국 고객들이 우리 그릇을 좋아하지만 한식과 안 맞아 망설인다는 소식을 듣고 오목한 형태의 그릇들을 바로 개발했다."
한국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1년 총 생산량 600만~700만 개 중 약 200만 개를 한국에서 판매하고 있다. 영국 매출의 75% 수준이고, 전 세계 매출의 3분의 2다. 영국에선 200년 동안 일군 성과를 한국에선 진출 3년 만에 이뤘다. 특히 밥그릇을 포함한 볼 종류가 한국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덴비는 1809년 영국 더비셔 지방에서 설립된 프리미엄 테이블웨어 브랜드다. 이 지역에서 나는 점토를 반죽해 불에 굽는 스톤웨어(도자기류)인데 높은 내구성으로 유명하다. 최소 20번의 수작업을 거쳐 핸드메이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세계 50여 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지만 해외 지사는 미국과 한국 두 곳에만 있다.

덴비가 한국 식문화에 맞춰 새로 개발한 국그릇과 밥그릇. 한국뿐 아니라 유럽, 미주 등 서구권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덴비코리아]

덴비가 한국 식문화에 맞춰 새로 개발한 국그릇과 밥그릇. 한국뿐 아니라 유럽, 미주 등 서구권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덴비코리아]

200년 역사를 가진 브랜드의 순발력과 유연성이 놀랍다.
 "귀 기울여 듣고 배워서 시장에 맞게 대응하는 것. 이게 우리의 철학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만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지 직원들이 필요한 그릇에 대해 개발 의견을 자유롭게 내면, 판매 규모와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언제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준비가 돼 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많은 한국 고객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한식과 우리 그릇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화려한 패턴이나 컬러 대신 뉴트럴(중성색)·파스텔 컬러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의 덴비 그릇이 한식을 예쁘고 맛있어 보이게 만든다는 평가다. 믹스앤매치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 또 한식에 맞는 형태의 그릇을 제공했다는 것도 성공 요인이다. 한국 진출 당시만 해도 작은 볼은 세 종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20여 종에 달한다. 간장·고추장을 놓는 작은 종지들, 반찬용 사각 접시도 한국만을 위해 개발했다."
덴비의 한식기. 작고 오목한 볼 형태의 밥그릇과 국그릇이 주다. [사진 덴비코리아]

덴비의 한식기. 작고 오목한 볼 형태의 밥그릇과 국그릇이 주다. [사진 덴비코리아]

덴비가 지금 한창 개발 중인 사각접시. 사진 속 제품은 3D프린터로 만든 시제품이다. 최근 한국에서 사각 접시가 인기를 끌자 개발에 들어갔다. 한국지사에서 필요한 그릇 종류와 모양, 사이즈를 영국으로 보냈고 디자인팀이 3D프린터로 모형을 만들어 한국으로 시제품을 보낸 것이다. 이 과정을 몇 차례 거쳐 모양이 확정되면 컬러와 패턴을 정하고 생산에 들어간다고 한다. 윤경희 기자

덴비가 지금 한창 개발 중인 사각접시. 사진 속 제품은 3D프린터로 만든 시제품이다. 최근 한국에서 사각 접시가 인기를 끌자 개발에 들어갔다. 한국지사에서 필요한 그릇 종류와 모양, 사이즈를 영국으로 보냈고 디자인팀이 3D프린터로 모형을 만들어 한국으로 시제품을 보낸 것이다. 이 과정을 몇 차례 거쳐 모양이 확정되면 컬러와 패턴을 정하고 생산에 들어간다고 한다. 윤경희 기자

한국 시장에 대한 평가는.
"한국은 아시아의 트렌드를 이끄는 국가다. 이건 내가 덴비에 오기 전 재직한 뷰티·패션 회사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이라면 몇 년 뒤 다른 국가에서도 성공한다는 게 상식이 됐다."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버얼리'의 티웨어. [사진 덴비코리아]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버얼리'의 티웨어. [사진 덴비코리아]

이번엔 티웨어 '버얼리'를 한국에 론칭한다.
"지금 한국에선 차·커피·케이크를 즐기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전형적인 영국 문화인 티 문화 시장이 커지는 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다. 한국 시장에 진입할 기회라고 판단했다." 
영국식 티 세트가 한국에 쉽게 안착할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버얼리는 1851년에 시작한 전형적인 영국 티웨어 브랜드다. 티슈 프린팅(동판에 얇은 종이를 덧대 프린트를 그리는 기법)을 통해 화려한 패턴이 특징이다. 덴비처럼 한식에 맞춘 디자인 개발은 하지 않을 계획이지만 영국의 티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버얼리를 이용해 제대로 즐기길 기대한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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