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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낸 만큼 받는 연금’ 7개 정당 손잡고 국민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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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스웨덴은 연금개혁에 성공한 모델로 꼽힌다. [AP=연합뉴스]

스웨덴은 연금개혁에 성공한 모델로 꼽힌다. [AP=연합뉴스]

 “덩치가 크고 인기가 많으며 비둔해 움직이기 힘들다.” 독일 연금 전문가 칼 힌리히스 브레멘대 교수가 연금을 코끼리에 비유한 말이다.

14년 대화 끝에 연금 개혁 성공 #영국도 2차 걸쳐 연금 수술 협치 #블레어가 시작 캐머런 마무리도 #“대결정치 비슷한 한국도 개혁 가능”

 연금제도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도 공적연금 개혁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하는 쟁점이다. 고도 경제성장기가 끝나고 인구 고령화가 닥치자 복지 선진국들도 기존 제도를 지속하기 어렵게 됐지만 연금 개혁에 대한 반발은 거세다.

 이런 난제를 모범적으로 해결한 국가가 스웨덴이다. 1913년 세계 최초로 모든 국민에 적용하는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한 스웨덴은 이념과 여야를 떠나 정당들이 함께 개혁안을 마련해 국민을 설득했다. 14년에 걸친 과정이었다.
 스웨덴은 15~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이 2030년 39.4%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2025년에 일하는 세대가 임금의 36%를 보험료로 내야 할 판이었다.

러시아에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사위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에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사위가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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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연금 재검토를 시작한 스웨덴 정부는 92년 7개 정당이 참여하는 ‘연금 실무작업단’을 꾸려 연구에 나섰다. 작업단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집권당인 사회민주당뿐 아니라 자유당, 신민주당, 좌파당, 온건당, 중앙당, 기독민주당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재무장관과 사법부 등이 전문가 그룹으로 동참했다.

 실무작업단은 ‘적게 내고 많이 받던' 기존 제도를 자기가 평생 낸 보험료와 평균 소득증가율 수준의 이자를 총자산으로 해 연금을 받도록 바꾸자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문 용어로 '확정급부형 연금'을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오래 일할수록 연금이 늘어 조기 은퇴를 억제하고, 젊은 세대가 고령자의 연금을 부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효과를 노렸다.

 실무작업단은 연금에서 소득재분배 기능이 사라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연금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연금급여액이 낮은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최저보장연금’을 국가 재정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스웨덴 정치권은 10년 가까이 국민 여론을 들어 세부안을 확정하고, 98년 최종적으로 연금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실무작업단은 지금도 운영 중인데, 아니카 스트란드헬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스웨덴 연금개혁 보고서의 영문판을 발간하면서 스트란드헬 장관은 “연금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렵고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다"며 “‘스웨덴 모델'로 불리는 연금개혁은 협력의 정신과 타협하려는 의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90년대 연금 합의의 기반을 깐 정치인들처럼 현재 정치인들도 안전한 연금을 제공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여긴다"며 “장기 정책에서 최선의 결과는 협력에서 나온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리헨티나에서도 정부의 연금 개혁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AP=연합뉴스]

아리헨티나에서도 정부의 연금 개혁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AP=연합뉴스]

 스웨덴의 연금개혁은 보험료 인상과 연금액 인하, 수급 연령 연장 등으로 수지 균형을 맞추려는 다른 국가와 달리 새로운 길을 택한 것이다. 영국 역시 우리와 제도가 다르지만, 초당적 협력 사례가 나타난 적이 있다.

 1986년 마거릿 대처 정부는 국가가 1층에 해당하는 기초연금만 책임지고, 2층부터는 직업연금이나 개인연금 등을 통해 해결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 민간연금의 비중이 급증했다.

 집권하면 보수당의 연금개혁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공약했던 노동당은 97년 집권 이후 보수당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며 보완 작업을 했다. 기존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수정해 ‘제3의 길'을 내세운 토니 블레어 정부는 민영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저소득층의 노후소득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했다.

 이후 국가연금에만 의존하는 노년 빈곤층이 늘어나자 권력을 재창출한 노동당은 2차 연금개혁에 나섰다. 기초연금을 강화하고 국가와 고용주가 기여하는 개인연금을 의무화하는 등 국가의 역할을 확대했다. 이 개혁은 노동당 정부가 2002년 시작했는데, 정권 교체가 이뤄진 2011년 보수ㆍ자유당 연립정부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완료했다. 초당적 합의의 정신을 살린 덕분이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EPA=연합뉴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EPA=연합뉴스]

 영국의 제도 변화를 연구한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저서 『코끼리 쉽게 옮기기』에서 “양당제가 정착한 영국은 집권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 결정을 하기 수월한 구조이고 대결의 정치 문화가 지배적이었음에도 2000년대 합의적 연금 개혁을 했다"며 “한국에서도 이런 개혁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합의를 통한 연금개혁은 연금위원회가 객관적 사실을 조사해 최소한 현실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발판을 만든 이후 이에 기초해 야당이나 노동조합, 사용자 단체 등과 초당적 합의를 이뤄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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