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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박정희 시대 국가 주도 모델, 지금은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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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호 10면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주의 논쟁을 제기한 데 대해 ’한국당이 새로운 기치로 탈국가주의란 화두를 잡아서“라고 설명했다. [임현동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주의 논쟁을 제기한 데 대해 ’한국당이 새로운 기치로 탈국가주의란 화두를 잡아서“라고 설명했다. [임현동 기자]

자유한국당이 가치 논쟁을 주도한 건 오래전이다. 대부분 기억하는 건 2012년 ‘경제 민주화’ 정도다. 그러다 최근 국가주의 논쟁을 제기했다.

국민을 왜 유치원생 취급하느냐 #그렇게 말했다면 논란 안 됐을 것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정답 없어 #공정거래위 지나친 개입은 잘못 #규제 풀고 시민 역할 키우는 건 #정부·여당 도와주고 협력할 것 #안보는 결국 평화를 위한 것인데 #정부 하는대로 따르면 잘 될까 걱정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취임 기자회견에서 “초·중·고교 내 커피 자판기 설치를 금지하는 법이 대통령이 사인해 공포됐다”며 “(문재인 정부엔) 국가주의적 경향이 곳곳에 있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여론의 주목을 받은 건 10여일 후 “국민이 어리석은 백성도 아닌데 ‘먹방’을 규제한다”고 비판하면서다. ‘국가주의’와 ‘먹방’의 결합은 폭발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논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탈(脫)국가주의에 자율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당으로 간다’는 기조를 이어갔다. 17일 국회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국민을 아직도 유치원생 취급하느냐’, 이렇게 얘기했으면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주의라고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이게 뭐지’하면서 그나마 관심을 갖게 됐다고 본다.”

정치학계에서 그러나 국가주의(statism)라면 ‘국가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절대적으로 우선한다’는 의미와 함께 무솔리니의 파시즘(국가사회주의)을 연상한다. 자율주의(autonomism)도 1960년대 유럽정치를 뒤흔든 68혁명의 급진좌파부터 떠올린다. 김 비대위원장에게 개념의 차이부터 물었다.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 회의에 김병준 비대위원장(오른쪽)과 김성태 원내대표(왼쪽) 등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 회의에 김병준 비대위원장(오른쪽)과 김성태 원내대표(왼쪽) 등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국가주의란 개념이 정치학계의 통념과 다르다.
“넓게 이해했다. 기본 생각은 (국가주의가)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대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부터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머리·치마 길이도 국가가 간섭했다. 그게 규제 완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상당히 약화했지만 여전히 그 패턴이 일종의 관성처럼 남아 있다가 강화됐다가 약화했다가 하면서 오고 있다는 게 내 인식이다. 이젠 벗어날 때가 됐다.”
국가주의를 개입주의로 이해하면 되겠나.
“그렇다. 그런데 억울하다고 할까, 답답하다고 할까 한 게 있는데 내가 이런 얘기(국가주의)를 하면 ‘철 지난 신자유주의 얘기를 하느냐’고 한다. 신자유주의는 그야말로 국가 전체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다. 난 국가의 보충적 역할이 있고 그게 절대 작지 않다고 본다. 시장의 여러 주체의 자유로운 정신과 자율 시스템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다 만들진 않으며, 그게 잘못되고 불공정한 일이 얼마든 일어날 수 있고 그럴 때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복지나 평생교육 체계 정립이라든가, 평화와 국가 안전을 지키는 데엔 국가가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맥락이라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보긴 어렵다.
“당시에도 곳곳에서 국가의 개입이 있었다. 교과서 국정화를 어떻게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나. 이명박 정부도 기업의 자유를 말하고 기업 활동을 많이 풀어주려 했지만 그런데도 전통적 법 체제가 있었고, 관료들이 완장 차고 시민사회와 시장을 지켜보고 감시·감독·규제하는 행위들이 계속 이어져 왔다. 이래서 대한민국이 미래로 갈 수 있을까,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은산 분리에서 드러나듯,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는 시장 자율을 키우는데 부정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경유착 등을 통해 기업의 지배력이 커지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뺏겼다는 생각이 드니까 (시민사회가) 오히려 국가권력을 어떻게 키워서 이걸 막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면 안 된다.”
한국당이 더 국가주의적인데 문재인 정부를 향해 비판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의원들에게 설문했더니 대부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자유, 자율이었다. 국가주도 시대가 지났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다. 과거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가, 그때는 그때대로 맞았을 수 있다.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도 모델이 틀렸느냐, 많은 이가 ‘그때는 맞았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주의 차원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보는 사안은 뭔가.
“공정거래위가 지나치게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에 개입하는 것이다. 거버넌스 구조에 대해 정답이 사실 잘 없다. 그런데도 계속 지주회사로 하고 지주회사의 밑에 있는 회사의 투자비율을 30%로 하라, 35%, 45%로 하라는데 과연 국가가 그렇게까지 하는 게 맞느냐다. 정말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제대로 된 기업이 될까, 답은 없는데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정해 들어간다. 최저임금도 획일적으로 규제했다.”
주목을 받은 건 먹방이다.
“쉽게 이해하라고 한 것이다. 학교 앞 자판기 철거에 찬성한다. 그러나 학교운영위도 있고 교장도, 학부모도 있는데 왜 국가가 하느냐. 현 정부가 특별히 더 했다기보다 관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국가주의 논쟁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비판이 얘기도 있다.
“지금 정부가 문재인 정부니까 얘기하는 것이다. (국가주의를 얘기하는 건) 한국당이 새로운 기치로 탈국가주의란 화두를 잡아서였다.”
그렇다면 한국당도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태까지 시장의 자유나 자율을 더 공고하게 하기 위한 법안들을 내놓았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는데 한국당이 반대해 오기도 했다. 하나의 흐름이 있는 것이다. 이걸 잘 정리해보자고 했다. 어제(16일) 김성태 원내대표가 청와대에서 얘기했지만 규제를 완화하는 것, 그리고 시민사회와 소비자의 역할을 키우는 건 도와주자, 협력해주자는 것이다. 규제프리존은 우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탈국가주의 관점에서 얘기하자고 했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내놓을 것이다.”
한국당의 오랜 두 축은 안보와 시장이었다. 이젠 안보를 덜 강조한다는 의미인가.
“의원들과 얘기해보면 결국 안보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 그걸 전제로 과연 정부가 하는 대로 하면 평화가 올까, 평화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결국 잘살기 위함인데 그럼 정부가 말한 대로 하면 우리가 다 같이 잘살게 될까, 이런 걱정들을 하는 거다.”
반공을 말했던 한국당에선 좀처럼 듣기 어려운 얘기다.
“민족도, 통일도 중요하다. 그런데 잘 먹고 잘사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평화체제가 왔다고 치자. 남북 교류가 왕성하게 이뤄진다고 했을 때 북한의 싼 노동력이 있다. 우리의 한계기업들은 생산기지를 어디로 옮길까, 여기 저소득층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남쪽에서 고용을 일으킬 수 있는 신산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이게 같이 안 가는 거니 걱정하는 것이다. 평화는 두 개의 축으로 이뤄진다고 본다. 하나는 대화·타협·협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튼튼한 국방력과 한·미 공조를 통한 제재나 압박 등 하드파워다. 대화와 타협·협상만 강조하지, 이것의 기본이  되는 국방력 문제나 제재에 느슨해져 버린다. 이게 우리가 바라는 평화를 가져다줄까를 걱정하는 거지, 무조건 안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얘기는 거의 없다.”
한국당이 가치논쟁을 주도한 건 오랜만이다.
“(논쟁을 계기로) 국가와 시장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정책을 보기 시작했다는데 만족한다. 결국 시장과 국가와 공동체의 세 개 바퀴가 서로 어울려 잘 돌아가는 세상, 나라를 구상해보자는 게 먼저였다. 밖에선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데, 그게 앞서가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봤다. 뭘 기대하는지는 아니까, 변화는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 체제가 출범한 지 한 달인데 한국당의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다.
“국민의 차가운 시선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상대 정당의 지지도가 내려갔는데 반사이익이 있다고 생각하면 혁신의 속도나 강도가 느려질 수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고정애 기자, 안희재 인턴(고려대 사회4)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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