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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금융산책] 돈이 많이 풀려서, 돈 줄이 말라서…이유는 달라도 금리 올리는 중앙은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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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준비제도(Fed) 빌딩

미 연방준비제도(Fed) 빌딩

 각국 중앙은행이 속속 기준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자본이탈ㆍ통화가치 하락 막으려 #신흥국, 기준금리 인상 대열 합류 #선진국, 경기 하강 대비 실탄 확보 #통화정책 정상화로 방향 틀어가 #31일 금통위 앞둔 한은의 선택은 #

 이유는 제각각이다.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한 경기 과열 우려에 돈 줄을 죄는 곳도 있다. 미국이다.

 반대 이유로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는 곳도 있다. 신흥국이다. 자본이 빠져나가며 돈 줄이 말라가자 이를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며 방어벽을 쌓고 있다.

 ‘터키발 충격’에 따른 통화 가치와 주가 하락에 놀란 신흥국은 부랴부랴 금리인상에 나섰다.

 첫 번째 신호탄은 아르헨티나가 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14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45%로 5%포인트 인상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다음 바통은 인도네시아가 이어받았다. 15일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이보다 먼저 금리 인상에 시동을 건 곳도 있다. 필리핀 중앙은행이다. 지난 9일 기준금리를 연 4%로 0.5%포인트 올렸다. 인상폭으로는 10년 만에 가장 크다.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물가 급등에 금리 인상의 문을 열었다.

 인도 중앙은행도 지난 6일 금리 인상에 나섰다. 기준금리를 연 6.5%로 올렸다. 꿈틀대는 물가를 잡기 위한 조치다.

 로이터통신은 16일 “물가 압력과 통화 가치 불안 등에 대응하기 위해 신흥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 들어 두 차례 정책금리를 올리고 연내 2회 추가 인상을 시사하면서 자본 이탈 등을 걱정하는 신흥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금리가 오르고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면 수익성을 쫓아 신흥국으로 들어갔던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터키발 충격’이 금융 시장을 강타하자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끌어올리는 대응에 나선 것이다. 돈 줄이 마를 수 있는 탓에 강둑을 높이는 셈이다.

 금리 인상으로 기수를 돌린 곳은 유동성 고갈 위험에 떠는 신흥국만이 아니다. 선진국 주요 중앙은행도 금리 인상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선봉에 선 곳은 Fed다. 3월과 6월 올 들어 두 번 정책금리를 올린 Fed는 연내 추가 2회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미국 경제는 Fed의 든든한 우군이다.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4.1%(연율 기준)를 기록했다. 6월 실업률은 4.0%다.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기세로는 인상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은 작아보인다.

 경기와 물가 지표의 약세에도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튼 곳도 있다.

영란은행은 1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진은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

영란은행은 1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진은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

 영란은행(BOE)은 지난 2일 기준금리를 연 0.75%로 0.25%포인트 올렸다.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만이다.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한 유럽중앙은행(ECB)도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며 통화정책 정상화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기준금리 인상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은행(BOJ)도 시장금리 상승을 유도하기 위해 대규모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는 등 긴축으로 반발짝 다가서는 모습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왼쪽)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중앙포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왼쪽)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중앙포토]

 랄프 프레우저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 환율 헤드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지표 부진에도 세계 3대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건 매우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로 돌아서는 건 금융위기 이후 동원했던 응급조치가 이제는 물가 상승에 불을 붙일 위험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경기 하강시에 대응할 실탄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경기 지표와 무관하게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이런 기류 속에 3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여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 소수의견이 등장하면서 인상을 위한 ‘깜빡이’를 켰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정부 규제를 받는 ‘관리 물가’를 제외한 2분기 소비자 물가가 전년동기대비 2.2% 상승했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금리 인상을 위한 명분을 쌓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터키발 충격’으로 금융 시장이 흔들리는 데다 고용 및 각종 경기 지표가 금리 인상을 뒷받침할 여건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고용 충격'은 진행형이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취업자(2708만3000명)는 1년 전보다 5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증가폭으로는 2010년 1월 이후 8년 6개월 만에 가장 적다. 실업자수는 지난 1월부터 7개월 연속 100만명을 넘었다.

 물가는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농산물과 유가를 뺀 7월 근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1% 오르데 그치며 3개월 연속 하락세다.

 때문에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8월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를 동결하겠지만 4분기 금리 인상 가능성은 열어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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