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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데이지호 실종 500일 넘어도 아들 생각에 에어컨 못켜”

중앙일보

입력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인 문원준(당시 26)씨의 아버지 문승용(60)씨. [사진 문승용 씨 제공]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인 문원준(당시 26)씨의 아버지 문승용(60)씨. [사진 문승용 씨 제공]

지난해 3월 남대서양에서의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로 아들을 잃은 문승용(60)씨는 올해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에어컨 한번 틀지 않고 생활했다고 한다. 지난해 겨울에는 스텔라데이지호 수색 재개 촉구 집회에 참석하면서 발가락 동상에 걸렸던 그다. 문씨는 16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선박 갑판 온도가 50도 넘는데 그곳에서 일했을 아들 원준이 생각에 에어컨을 못 틀겠다”며 “실종 500일이 지났어도 생사를 확인 못 해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 심해수색 환영…“사고 원인 규명해야 제2 사고 막는다”

문씨의 아들 원준(실종 당시 26세)씨는 2016년 1월 27일 열린 한국해양대 졸업식에서 2000여명의 졸업생을 대표해 연단에 오른 명예사관장(학생회장)이다. 졸업과 동시에 폴라리스쉬핑에 입사했고 2017년 2월 스텔라데이지호에 승선했다가 한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가족들이 지난해 5월부터 요구해왔던 심해수색이 지난 14일 결정됐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스텔라데이지호 남대서양 사고지역 심해수색 장비 투입 관련 예비비 지출안’이 통과됐다. 책정된 예산은 53억원이다. 우리 국민이 실종된 해양사고와 관련해 심해수색이 이뤄지는 것은 정부 수립 후 이번이 처음이다.

문씨는 정부 결정이 늦었지만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늦게라도 문재인 정부가 심해수색 장비투입을 결정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심해수색으로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를 회수하면 침몰 원인 규명이 가능해진다. 또 발견하지 못한 구명벌 2척의 행방 여부를 알아낼 가능성도 있다. 문씨는“스텔라데이지호가 뒤집혀서 침몰하지 않았다면 선상에 설치된 블랙박스 회수가 가능하다”며 “또 선수에 매달려있던 구명벌 1척과 해수면에 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명벌 1척의 행방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걸었다.

스텔라데이지호에는 구명정 2척과 구명벌 5척이 장착돼 있었고, 침몰 당시 구명정 2척과 구명벌 3척이 사고 인근 해역에서 발견됐다. 가족들은 발견되지 않은 구명벌 2척에 실종자들이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일 열린 노동절 기념식 및 정책연대협약체결행사에 참석하려고 스텔라 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에 둘러싸여 이야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일 열린 노동절 기념식 및 정책연대협약체결행사에 참석하려고 스텔라 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에 둘러싸여 이야기하고 있다. [중앙포토]

실종 가족들은 침몰 원인이 규명돼야 제2의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는 “스텔라데이지호처럼 유조선을 개조해 운항 중인 노후 선박이 27척이나 더 있다”며 “노후 선박의 위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제2의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심해수색 업체 선정이 중요하다는 게 허 대표의 생각이다. 허 대표는 “스텔라데이지호는 3200m 심해에 침몰해 있기 때문에 블랙박스 회수가 쉽지 않다”며 “심해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는 수색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선정 과정에 가족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지난해 3월 31일 (한국시각) 오후 11시 20분 남대서양 우루과이 인근 해역에서 침몰했다. 침몰 직후 필리핀 선원 2명은 구조됐지만 한국인 선원 8명과 필리핀 선원 14명이 실종됐다. 정부가 지난해 5월 10일 수색을 중단하자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수색 연장을 촉구하는 민원을 문재인 정부 1호로 청와대에 접수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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