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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동문 7000여 명 '스승의 은혜'합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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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휘문고 100주년 기념식이 9일 저녁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재학생과 졸업생.교직원 등 8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한기성 전 휘문고 선생님, 신호철 교우회 부회장, 최희유 동문, 손석희 성신여자대학 교수(앞줄 왼쪽부터) 등이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다. 최승식 기자

"'칼의 노래'를 읽었는데 아무리 제자가 쓴 글이지만 국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배울 게 참 많더라."(박용식.71.휘문고 국어교사 1975년 퇴직)

"저는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잖습니까. 선생님들로부터 배운 구문(句文)이 작품에 절대적 도움이 됐습니다."(소설가 김훈.58.58회)

서울 휘문고등학교가 9일 '스승과 함께하는 개교 100주년' 행사를 열었다. 행사가 열린 잠실 실내체육관에는 졸업생.재학생 및 전.현직 교사 등 7000여 명이 모여 축하했다.

이 자리에서 김훈씨를 비롯한 38명의 졸업생은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과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회포를 풀었다. 사회적으로 번듯하게 자리 잡은 졸업생들이지만 이날만큼은 고교 시절 말썽꾸러기로 돌아가 미리 와서 은사들을 기다렸다 손을 맞잡고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무대에 오른 졸업생들은 재학 시절의 은사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재학생들과 함께 '스승의 은혜'를 합창했다.

70년대 농구스타 신동파(61.55회)씨는 "저기 뒷모습에 하얗게 센 머리만 보이는 분이 내 고3 담임 선생님"이라며 설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난타'의 제작자 송승환(49.67회)씨는 고3 시절 입시 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 음악 시간마다 클래식 한 곡씩을 들려주던 조동제(72) 선생님을 만났다. 조 선생님은 송씨를 "고등학교 때부터 방송 활동을 하던 학생이었는데 학교 생활도 어찌나 성실하게 하는지 칭찬이 자자했다"고 기억했다.

80년대 '자니윤 쇼' '유머 1번지' 등을 히트시킨 개그작가 전영호(53.64회)씨는 엄했던 학생주임 전광일(81) 선생님을 만나 지난 이야기를 풀어놨다. 전씨는 "패싸움에 휘말려 정학까지 맞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며 큰절을 했다. 전광일 선생님은 "반성문을 쓰라고 도서관에 가둬 놓으면 다른 아이들 반성문까지 구구절절 써 줄 정도로 재주가 넘쳤던 제자"라며 전씨를 다독였다.

은사가 기억하는 옛 시절도 화제가 됐다. 노융희(79.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선생님은 전 과기처 장관 서정욱(72.44회)씨를 "6.25 전쟁 동안에도 산꼭대기 중턱에서 성실히 공부하던 청년"이라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나이는 7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사제지간이었다. 김옥배 이사장은 축사에서 "휘문고가 100년 동안 한국 사회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 왔으며 21세기에도 민족의 앞날을 열어 가는 데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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