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뒷문'도 심사 깐깐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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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회상장 기업은 수익이나 자본금이 기준에 미달하면 증시에서 퇴출당한다. 또 지금까지 합병 방식 때만 이뤄졌던 심사가 주식교환 등 모든 유형의 우회상장으로 확대된다.

금융감독위원회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우회상장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규정을 고쳐 6월 중 시행한다고 밝혔다. 우회상장이란 자격 미달인 회사가 이미 상장된 회사를 사들여 이른바 '뒷문'으로 시장에 입성하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바이오.엔터테인먼트 업종을 중심으로 우회상장이 부쩍 늘면서 투자자 피해가 우려돼 왔다. 지난해 우회상장은 67건으로 전년보다 81% 급증했다.

금감위에 따르면 3월 음반기획을 하는 A사는 섬유업체인 코스닥 B사와 합병해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A사는 적자로 자본금을 까먹었는데도 버젓이 증시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B사도 주가가 하락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던 전력이 있었다. 그러나 규정상 장외기업 규모가 상장사보다 클 때만 합병 심사를 받게 돼있는 점을 이용해 부실했던 두 회사의 우회상장이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A사 주식은 회사가 가진 실제 재산보다 930%가량 부풀려져 값이 매겨졌고, 우회상장 전후 B사 주가는 878% 급등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합병을 제외한 ▶포괄적 주식교환(비상장사 주식을 100% 교환하는 것) ▶주식 스와프(비상장사 주식을 일부 교환) ▶영업권 인수 등으로 우회상장을 할 때는 아예 심사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심사 규정의 허점을 노려 지난해 포괄적 주식교환과 주식 스와프 등이 각각 25건(212% 증가)과 14건(135%)으로 크게 늘었다. 또 우회상장에 뛰어든 비상장사의 절반과 상장사의 70%가량은 손실을 내거나 자본이 잠식된 '불량 기업'들이었다.

금감위는 이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 앞으로 합병은 물론 ▶포괄적 주식교환 ▶주식 스와프 ▶영업권 인수 등 모든 우회상장에 대해 신규 상장에 준하는 수준의 이른바 '합병 요건'을 충족하는지 따지기로 했다.

금감위 김용환 감독정책2국장은 "우회상장으로 증시에 새로 들어온 기업에 대해 자본잠식이 없고, 경상이익을 내며, 감사 의견이 적정한지 등을 따져 자격이 되는 회사만 남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준을 벗어나는 요건이 발견되면 즉시 증시에서 쫓겨난다. 또 투자자 보호를 위해 거래소 전산시스템을 통해 '우회상장 종목'이란 꼬리표도 2년간 따라붙는다.

우회상장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도 복수기관이 참여한다. 지금까진 우회상장에 나선 기업들의 회계법인이 가치평가를 하는 바람에 주식가치나 매출을 부풀리는 사례가 있었다.

굿모닝신한증권 박동명 연구원은 "정보 부족으로 우회상장 업체의 들러리였던 개인투자자 피해가 줄 것"이라며 "다만 우회상장은 구조조정 효과도 있는 만큼 부실 기업들이 증시에서 장난치는 것을 막을 정도로 수위를 조절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준술.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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