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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고유가 시대'에 만난 SK㈜ 신헌철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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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헌철 SK㈜ 사장은 에너지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유전 개발 지역을 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으로 다각화하겠다고 강조했다. [SK㈜ 제공]

만난 사람 = 김동섭 산업 데스크

유가가 너무 올라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가 많이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는 요즘 배럴당 70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2005년 초순(약 35달러)의 거의 두 배다.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액도 2004년 300억 달러에서 지난해 430억 달러로 약 43% 증가했다. 최근 들어서는 휘발유 1ℓ에 1700원 이상을 받는 주유소도 생겼다. 국제 유가가 안정될 전망도 불투명하다. 남미 각국은 대중영합주의의 물결을 타고 유전.가스전의 국유화를 잇따라 선언하며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상황이다. 원유를 100%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경제와 국민 살림살이에 크게 주름이 질 판이다. 한국의 대표적 에너지 기업인 SK㈜는 국제 유가가 어디까지 오르리라고 보며,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신헌철 SK㈜ 사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4일 서울 서린동 SK㈜ 사옥 25층 사장실 부속 접견실에서 했다.

-국제적인 경제연구기관들이 한때 "배럴당 100달러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더니 이젠 "15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유가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요즘처럼 기름값이 계속 오르는 게 언제까지 갈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달, 세 달, 아니면 연말까지 오를지도 모르지요. 당분간 고유가가 지속되겠지만 결국 배럴당 50~60달러 사이로 돌아올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원유 공급이 크게 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군요.

"사실 지금도 수요 공급 균형은 대체로 맞습니다. 다만 세계 경제가 비교적 호황이어서 앞으로 원유 소비가 늘 것이란 기대감과 산유국인 이란의 핵 문제, 나이지리아의 정권 위기 등에 따른 불안감 등이 겹쳐 유가가 오르는 거지요. 산유국들의 전쟁 같은 큰 문제는 실제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권투로 치면 '잽'에 해당하는 사안들이 있긴 한데, 그게 여럿 겹쳐 '훅'의 위력을 내는 겁니다."

-원유 시장에 투기자본까지 가세했다고 들었습니다.

"원유를 사두면 값이 올라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원유 투기 자본이 2년쯤 전엔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정도였는데 이젠 200억 달러로 늘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유가가 오르리란 불안 심리가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상황을 정원 20명이 찬 보트에 비유합니다. 좀 흔들려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괜찮은데, 한둘이 불안하다고 갑자기 일어나니 배가 기우뚱하고, 이번엔 반대쪽에서 또 우왕좌왕하면서 배가 더욱 크게 흔들리는 것 같은 상황이지요. 한마디로 실제 원유 수급이 달리는 게 아니라 모두 불안해하는 게 문제입니다."

-고유가 시대에 산유국들은 돈을 법니다. 우리도 해외 유전을 많이 갖고 있었다면 고유가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SK㈜의 해외 유전 개발 계획이 궁금합니다.

"SK㈜는 1984년 예멘 마리브 유전에서 시작해 지금은 베트남.브라질 등 12개국 19개 유전.가스전에서 생산.탐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해외 유전에서 매출 3350억원, 영업이익 2100억원을 올렸습니다. 아직 이 분야 매출이 전체(지난해 22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가 채 못 되는 게 현실입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2000억원 늘어난 3400억원을 해외 유전 개발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현재 해외에서 하루 2만4000배럴 정도를 생산하는데 투자를 계속 늘려 2010년에는 10만 배럴까지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SK㈜의 유전 개발 투자 규모를 미국의 엑손 모빌, 영국 BP 등 이른바 '석유 메이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엑손 모빌.BP 등은 유전 개발에 한 해 100억 달러 정도를 쏟아붓습니다. 우리의 30배죠. 사실 그들은 매출이 SK㈜의 약 15배, 당기순익은 20배 정도입니다. 자금력의 차이가 워낙 큽니다."

-자금력의 차이를 극복할 방안이 있습니까.

"'패키지 딜'이란 게 있습니다. 3억 달러짜리 유전이 있다면 1억 달러는 현금으로 주고 2억 달러어치는 유전 보유국에 도로.공장.발전소.통신시설 등을 지어주는 방법이지요. 그러니까 석유회사뿐 아니라 건설.통신 회사 등이 함께 유전 입찰에 참여하고, 건설 회사 등은 나중에 생산한 원유로 대금을 받는 식입니다. 이미 산업자원부와 SK㈜.포스코.한국전력 등이 협의체를 만들어 이런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SK건설.SK텔레콤 등이 있는 SK그룹 자체로도 '패키지 딜'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은 90년대부터 에너지 기업들이 해외 유전을 확보하는 데 정부가 발 벗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해외 유전 탐사를 지원하는 '성공불 융자'라는 게 있습니다. 유전을 탐사하는 기업에 빌려주되, 유전을 찾아냈을 때만 돌려받는 것이지요. 그러나 기업들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적극 해외 유전 개발에 나서는 상황에 비춰본다면 그 규모가 크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지난해 민간기업들에 돌아온 게 1000억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을 크게 늘릴 현실적 방안이 있습니까.

"올해 말이 시한인 교통세를 활용하면 어떨까 합니다. 도로와 도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기 위해 휘발유와 경유에 붙인 목적세인데 지난해 약 10조원이 걷혔습니다. 정부가 내년부터 이를 어디에 쓸지 방안을 짜고 있습니다. 이 세금이 석유제품에 붙이는 것인 만큼 일부를 해외 유전 개발 지원자금으로 돌리는 게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닐까 합니다."

-해외 유전 개발을 뒷받침하는 정부의 자원 외교 노력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아프리카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등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실제 자원 보유국과 사업 논의를 하는 데 이런 정상 외교가 큰 힘이 됩니다. 중국은 후진타오(湖錦濤) 국가 주석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동.아프리카.남미 등을 돌고 있습니다. 후 주석은 벌써 지구를 세 바퀴나 돌았습니다."

-석유 수입이 지나치게 중동 일변도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중동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은 문제입니다. 이란 핵 문제 등으로 만일의 사태가 생기면 타격이 큽니다. SK㈜는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와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도 다져가는 한편 원유 수입처를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로 다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해외 유전 중에서도 아프리카.북해 유전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남미의 자원 민족주의도 우려할 만한 상황 아닐까요. 포퓰리즘 바람을 타고 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 각국 정부들이 유전과 가스전 국유화를 잇따라 선언하고 있습니다.

"곧 미국 등이 나서 정치.경제적 해결책을 찾을 겁니다. 남미 국가들이 유전을 국유화하면, 그곳에 유전을 확보해 놓은 미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들이 피해를 많이 봅니다. 이런 기업들 상당수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텍사스주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결국 미국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남미에 유전.가스전이 있는 유럽연합(EU) 기업과 정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기름값이 자꾸 오르니 석유회사들만 큰돈을 번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습니다.

"아이고…(손사래를 치며) 매출은 늘어도 영업이익은 줄어드는데요. 매출이 증가하는 건 단지 원자재인 원유 가격이 올라 휘발유 등 석유제품값도 덩달아 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석유제품값은 원유만큼 많이 인상되지 않았습니다. 올리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올립니다. 국내에 석유제품 수입사가 43개 있어 정유사들이 휘발유나 경유 가격을 국제시세보다 높이면 당장 이들이 석유제품을 수입해 값을 떨어뜨립니다."

-결국 국제 석유제품값 상승이 원유가격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얘기인데요.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는 수요-공급 균형이 제일 큰 영향을 줍니다. 반면 요즘 원유가격 상승에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불안감.투기자본 등의 요소가 덧붙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원자재인 원유 가격은 뛰는데 석유제품은 천천히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SK㈜ 같은 정유회사는 마진이 줄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도 역시 해외유전 개발입니다. 요즘 고유가 때문에 유전 가격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유전을 사들이는 비용을 포함해 배럴당 생산 원가가 20달러 아래입니다. 1배럴을 팔면 40~50달러가 남는 거지요. SK㈜가 해외 유전 개발 투자를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SK그룹 전체가 중국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SK㈜는 어떻습니까.

"이미 2004년 중국 사업을 총괄하는 지주회사(SK차이나홀딩스)를 세웠습니다. 해마다 중국이 도로 포장에 쓰는 아스팔트의 40%를 SK㈜가 공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해 약 2조원이었던 중국 관련 매출을 2010년엔 5조원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정리=권혁주 기자

신헌철 사장은 …

신헌철 SK㈜ 사장은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친을 사고로 여의고, 부산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던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동래중 시절 전교 1, 2등을 다투고도 집안 형편 때문에 상업계인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부산대를 졸업한 뒤 첫 직장으로 SK㈜를 택해 2004년 입사 32년 만에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이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SK㈜.SK가스 등 에너지 기업을 떠나 1995년 SK텔레콤(당시 한국이동통신)으로 옮겼을 때는 생소한 사업 환경에 빨리 적응하려고 아예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놨을 정도다.

90년대 말 퇴행성 관절염을 이기려고 마라톤을 시작했다가 병을 고치고서는 마라톤 예찬론자가 됐다. 지금까지 아홉 차례 풀코스를 완주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땐 지인들에게 자신이 완주하면 1만원 이상을 기부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완주한 뒤에는 지인들의 기부금에다 자신의 성금을 보태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하고 있다.

▶45년 경북 포항 출생 ▶72년 부산대 경영학과 졸업 ▶72년 SK㈜(당시 대한석유공사) 입사 ▶91년 SK가스 영업담당 이사 ▶95~98년 SK텔레콤 수도권본부장(전무) ▶98~2002년 SK텔링크 사장 ▶2002~2004년 SK가스 대표이사 부사장 ▶2004년 3월~ SK㈜ 대표이사 사장

SK㈜는 …

▶사업 분야:원유 정제, 해외 유전 개발, 석유화학, OK캐쉬백

▶2005년 경영 실적

-매출:21조9000억원(수출 10조7000억원, 내수 11조2000억원)

-당기순이익: 1조6900억원

▶해외 유전.가스전 개발

-진출국:베트남.예멘.브라질.리비아 등 12개국 19개 광구

-확보 매장량(2005년 말):4억 배럴

-하루 생산량(2005년 말):2만4000배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