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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민주화운동 등 소재 다양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소설이 근본적으로 이야기라면 소설가는 이야기꾼이다. 이야기꾼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혹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재능을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삶의 모습과 관련된 것이지만 작가의 독창적인 방법이란 그것을<낯설게 하기>에 의해 지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작가의 등장은 삵의 보이지 않는 정체를 드러내려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미 무수하게 많은 작품이 기성의 작가에 의해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밝혀져야 알 삵의 감추어진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역사의 전환기를 맞은 한국소설은 최근 삵과 역사의 새로운 정체를 봇물 터지듯 들춰내고 있다. 그 동안 막혔던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은 분명히 한국소설의<80년대 증후군>이라고 불릴 수 있다.
출판의 활기와 함께 수많은 신인들의 등장 자체도 여기에 속하겠지만 그보다는 분단문제에 대한 새로운 조명,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노동쟁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 그리고 이 모든 문제에 작용하고 있는 거대한 폭력의 드러냄 등은 이 시대의 문학의 현실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최근의 소설은 놀라운 활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달에 읽은 작품 가운데 그러한 활력을 느끼게 한 것으로 4O여년 동안 말하지 못한 분단의 비극을 다룬 신영철의『말하는 침묵』(『월간문학』9·10월 호). 우리 사회의 현안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그것이 유년의 현재와 미래의 정서에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보여주는 문정모의『빛』(『창작과 비평』가을호),사회적인 체험이 제한된 상태에서 홀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일생을 살아온 여성(유덕희의『어머니의 세상살이』)과 구속된 딸로 인해서 생활을 잃어버린 어머니들의 일상적 현실과 심리(김향숙의『불의 터널』)를 다룬 두 작품, 이러한 세계 속에서 소실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질문하고 괴로워하는 박인홍의『벽 앞에서의 사랑을 위한 밑그림』(『문학과 비평』가을호)과 최수철의『알몸과 육성』, 40년 세월의 간격을 둔 어머니와 아내의 비슷한 출산 체험을 통해 삶의 상처와 아픔을 다룬 이승우의『유산일지』등은·사물에 대한 눈의 새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들은 문학의 역할사명으로만 강조될 때 소설이 자기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고 결말의 예측성 언어의 조야성, 이야기의 상투성이<낯설게>만들지 못함을 자각함으로써 문학적 문제에 투철한 의식을 갖고있다.
김치수
(이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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