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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실상 알려 「개혁추진」뒷받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7일 개막된 소련 최고 소비에트회의는 지금까지의 형식적 의사진행과는 달리 소련 사상최초로 적자재정편성을 공표하고 지금까지 계속돼온 만성적 재정적자를 정부가 인정하는 등 종전엔 볼 수 없던 새로운 면을 보임으로써 주목을 받고 있다.
27일 「보리스·고스테프」재무상이 최고회의에서 발표한 89년 소련의 국가예산은 세입 4천5백80억루불, 세출 4천9백40억루불로 재정자금부족(적자)이 3백60억루불(미화 약 5백80억 달러), 즉 예산 전체의 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고스테프」재무상은 또 이 같은 적자예산이 소련 국가재정의 만성적 현상임을 인정, 그 원인으로 ▲불균형경제구조 ▲국가보조금의 과다 ▲확대위주의 경제운용에 따른 경제적 손실 ▲인민의 국가에 대한 기생적 활동양식 ▲소극적 재정정책 등을 들었다.
「고스테프」재무상은 특히 최근 소련의 재정을 어렵게 한 직접원인은 소련의 주요수출품목인 원유가격의 장기적 하락으로 인한 수입감소, 금주캠페인에 따른 주세 수입감소, 그리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엄청난 재해 복구비용 등을 지적했다.
그는 최근 2∼3년간 국제원유가 하락으로 소련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4백억루불 (미화 약 6백50억 달러)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소련 정부가 이처럼 그 동안의 재정적자를 스스로 인정하고 적자재정으로 예산안을 편성한 것을 공표한 것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우선 「고르바초프」서기장의 글라스노스트(정보공개)정책에 따라 국민들에게 정부의 실정을 정확히 알림으로써 협조를 구하는 한편 소련 국민에게 팽배해 있는 「국가 의존적」발상을 제거함이 일차적 목표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서방측에 비교적 실제에 가까운 소련경제의 실상을 보임으로써 현재 소련 경제개혁에 필수적인 서방측의 경제협력을 얻기 위한 신뢰 강화의 측면도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예산안의 또 다른 특징은 종래 소련의 중공업 우선에서 탈피, 소비재 생산증가와 주거환경 개선 등 복지측면을 강화한 것이다. 소련정부는 내년도 소비재생산을 6% 늘리도록 계획을 잡고있으며 이에 대해 중공업은 2.5% 신장에 그치고 있다.
소련 예산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국방예산은 87년이래 3년간 2백2억루불 대로 전체 세출의 5%미만 수준을 유지해오고 있으며 내년엔 4.1%로 명목상 최저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소련의 국방예산은 서방측과는 달리 인건비 등 군의 순수한 「유지비」만을 의미하며 무기개발비·대외군사원조 등은 별도예산으로 편성돼 있어 실제국방예산은 전체예산의 15%(미CIA추산) 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방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 것만은 확실하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의 「유리·마슬류코프」는 지금까지 전체생산물의 85%를 국가가 구입, 배급하던 것을 내년엔 25%로 대폭 낮출 것이며 거의 모든 생산물을 공개시장에서 소비자 수요에 따라 구입하는 시장원칙을 과감히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소련정부의 적자재정 예산편성 발표는 현재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항로와 깊은 연관을 가진 것으로 개혁정책의 부진을 역대정권으로부터 계속돼온 「만성적」경제운영부실에 그 책임을 돌리는 한편 페레스트로이카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는 「고르바초프」의 자신에 찬 새로운 개혁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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