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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밤에도 일하고 배달도 해주는데 … 자영업 위기 해소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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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자영업자 대책이 하반기 정부 경제정책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곧 임명될 자영업비서관은 임대료와 가맹점 수수료, 그리고 카드수수료는 물론 금융 비용 문제까지 포함해 자영업자 종합 정책을 전담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전방위 지원 대책을 통해 현재의 자영업 위기 국면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환영할 만하다.

시장 실패로 자영업자 과잉 공급 #치열한 가격 경쟁에 내몰려 #단계적 감축과 적정 규모 위해 #협회 차원의 자율적 협약 필요

다만 현재까지 관련 부처와 국회에서 논의되는 정책 대안들은 자영업자에 대한 단순 지원과 보호에 그치고 있다. 이번 정부 정책이 자영업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일시적 처방의 성격을 띠는 점은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 지원 방안과 함께 중장기적 위기 해소 대책이 준비돼야 한다는 점이다. 자영업 위기의 본질을 정조준하는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경제위기 뇌관은 제거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자영업의 영세성은 낮은 부가가치와 관련이 있다. 이는 자영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이 떨어져 부가가치도 낮은 것으로 오인되기 쉽다. 대표적 영세 자영업에 속하는 음식업을 보자. 깐깐한 조리법을 지키는 전통 맛집들이 즐비한 가운데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새 메뉴로 소비자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많은 경우 밤늦게까지 손님을 맞이하고 심지어 배달도 해준다. 세계 어느 자영업자에게서 이 같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 자영업의 부가가치가 낮은 것은 서비스의 질 때문이 아니다. 바로 서비스에 대한 시장가치가 낮게 형성돼 있는 탓이다. 자영업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항시적 초과 공급으로 서비스 가격이 저평가된 것이다. 인구 대비 최고 수준의 자영업자 비율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치열한 가격 경쟁에 내몰린 결과다.

진입장벽이 낮은 자영업은 경제학원론대로라면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까워 가장 효율적 결과를 보여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2015년 기준 자영업자의 생존기간이 평균 2년 반에 불과하고, 5년 내 폐업할 확률이 72%에 이른다. 이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올 한해만도 100만 명 이상이 어렵게 시작한 사업을 접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은 이 분야에서 엄청난 자원이 낭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사업의 신규 진입은 거의 동일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업 초년생들은 불과 3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누군가 폐업한 사업장에서 종전과 같은 방식의 비즈니스를 통해 불확실한 성공을 꿈꾸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영업자 본인이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실패와 좌절로 난파될 위험이 큰 배에 오른다는 사실이다.

시론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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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최근 2년 동안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을 상대로 질문한 결과, 이 사업이 아니면 다른 선택이 없었다든가 또는 임금근로자로 있을 수 없어 자영업을 선택했다는 비중이 36%나 이른다. 낮은 기대수익에도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선택하는 경제 현실이 바로 우리나라 자영업 시장 실패의 본질이다. 단순 지원과 보호라는 방식만으로는 시장 실패를 치유할 수 없는 이유다. 560만에 이르는 OECD 3위의 자영업자 규모를 조정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비자발적 자영업자의 높은 비중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자영업의 미래란 없다.

반강제적 명퇴 이후 중장년층이 전통적인 생계형 창업에 투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 재원을 조금이라도 더 확충해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재정은 사업 결손을 메꿔주는 것이 아니라 직종 전환을 위한 훈련과 전문 상담 지원에 먼저 이용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이 자신의 직업적 경력에 기초해 새 형태의 서비스업을 개발할 수 있도록 재취업 지원 정책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또 소상공인의 자발적 혁신 노력이 중요하다. 소자본에 기초한 개인 창업과 경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상인조합 결성을 통한 규모 확대 노력이 절실하다. 조합화에 기초한 자발적 상인네트워크는 지역 혹은 업종 단위의 재료와 자재의 공동 구매에 도움을 주고, 유통과 마케팅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합화 노력에 금융·세제 지원을 집중해 규모의 경제 효과와 생산성 제고를 통해 소상공인들이 골목상권 유지보다는 광장상권을 형성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영업자의 단계적 감축과 적정 규모 유지를 위해서는 상인조합 나아가 협회 차원에서 자율적인 협약을 만들어 특정 지역이나 직종 내 창업의 수와 양태를 조절해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영업자 간 과당 경쟁을 방지하려면 유사 업체의 출점과 점포 간 거리를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시장의 황금률이 사회적으로 도출돼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새롭게 개발되고 공인된 창의적 서비스 업종부터라도 일종의 자격증 제도 도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