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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반헌법적 기무사 전횡, 재발 원천 차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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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열수 전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

김열수 전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기무사 개혁이라는 3각 파도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연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기무사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과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 문건 관련 의혹’은 이를 수사할 군·검 합동수사기구가 출범했기에 수사가 종료되는 대로 발표될 것이다. 기무사 개혁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휴가 중임에도 새 기무사령관을 임명하고 기무사를 근본적으로 재편해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라고 지시함으로써 본격화됐다.

국회 무력화 계획이 들어있는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반헌법적 #대통령·비서실장 등 독대 차단해 #기무사의 정치화 유혹 근절해야

기무사의 3각 파도는 기무사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기무사의 정치화를 조장하여 권력을 공고화하려 했던 정부의 책임도 크다. 기무사의 고유 업무는 방첩과 보안이 핵심이다. 방첩이란 군에 간첩이 침투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보안이란 군의 기밀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무사는 ‘군 및 군 관련 첩보의 수집·처리’라는 임무를 더 중시했다. 민간인을 사찰할 수 있는 유혹의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월호 유족들로부터 군 및 군 관련 첩보를 수집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정치적 첩보를 더 많이 수집한 것이다. 물론 이런 사찰을 통해 수집된 첩보를 듣고 싶어 하는 정부의 정치적 욕구도 한몫했다. 이런 정치적 욕구가 기무사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이라는 불법을 방조하고 심지어 추동질까지 하게 되었다.

기무사의 계엄령 관련 문건 의혹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기무사는 내란·외환·반란·이적의 죄 등 특정 범죄에 대해 수사할 수 있도록 군사법원법 제44조에 명시되어 있다. 기무사는 건군 이후 현재까지 전 공안기관 검거 간첩의 43%를 검거하기도 했다. 이런 기록이 기무사에 특정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계속 갖도록 하는 명분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인들도 ‘특정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따라 이들을 사찰하고 싶은 유혹의 근거다. 물론 이런 사찰을 통한 정치인들에 대한 감시가 정권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정부의 정치적 욕구도 있다.

시론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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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77조 1항에는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 제5항에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계엄법 제10조에도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고 이를 공고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 문건’에는 반헌법적 모의가 들어 있다. 국회가 임시국회를 소집하여 계엄 해제를 가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건에는 당정 협의를 통해 직권 상정 및 표결 저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단은 불법 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 활동 의원을 집중적으로 검거하여 사법처리 함으로써 의결 정족수에 미달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말 안 듣는 국회의원들을 검거함으로써 계엄 해제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국회 무력화 계획이다.

기무사의 임무를 벗어나는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는 합동수사기구에서 철저하게 밝혀내리라 본다. 그러나 기무사개혁위원회가 5월 25일부터 약 70일간 연구했던 개혁안 발표 내용을 보면 기무사의 불법성은 향후에도 근절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개혁안의 내용에 동감하는 부분도 많다. 조직과 규모를 축소하고 주요 직위자에 대한 지속적 동향 관찰 및 신상 보고 금지 등의 개혁안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무사가 대통령을 독대한다든지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실에 별도 보고를 하지 못하게 하지 않는 한 기무사의 정치화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국방부 장관을 우회해서 청와대에 별도 보고 채널이 있는 한 군 간부들은 기무사를 ‘특별한 조직’으로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도 기무사에 ‘은밀한’ 첩보를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못하도록 제도화해야 진정한 기무사의 비정치화가 달성될 것이다.

반란의 가능성 때문에 대통령이 기무사로부터 독대 보고를 받을 필요는 없다.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직접 받으면 된다. 사실 반란이든 친위 쿠데타든 이것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0%라고 본다. 대한민국 군대는 이미 민주화되었고 대부분의 군 간부들은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에 철저하기 때문이다. 반란이든 친위 쿠데타든 누군가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군을 출동시킬 경우 오히려 많은 간부는 이에 불복하거나 SNS를 통해 이를 고자질하기 바쁠 것이다.

김열수 전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