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뛰는 물가 … 소득주도성장 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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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 주도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 농산물, 외식비, 기름값 등의 가격이 전방위적으로 뛰고 있다. 폭염, 유가 상승에 최저임금 인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벌이가 늘어도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 실질소득은 크게 늘지 못한다. 가뜩이나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물가마저 소득 주도 성장의 발목을 잡으며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농산물 폭염으로 매주 30% 급등 #외식·서비스업은 최저임금 여파 #기름·공산품값까지 전방위 상승 #“경기침체·인플레 동반 타격 우려”

한국은행은 29일 정부가 사실상 관리하는 전기·수도·가스요금 등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이 올 2분기에 2.2%라고 밝혔다. 이보다 앞서 내놓은 올 2분기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5%였다. 이런 수치와 달리 국민들은 급등하는 물가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한 달 전과 비교해 시금치는 98%, 고랭지 배추는 80%씩 가격이 치솟았다. 폭염 때문이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의 김명배 대아청과 기획팀장은 “폭염에 배추나 열무, 포도 등의 물량이 예년보다 50~30% 줄었다”며 “가격은 일주일에 20~30%씩 뛰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도 물가를 끌어올린다. 올해 초 배럴당 60달러대 초반이던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는 5월 74달러까지 치솟았고, 6월 이후에도 70달러대 안팎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이 여파로 서울의 휘발유 평균가격은 29일 L당 1697원으로 1700원 코앞까지 올랐다. 전국 평균가도 1612원으로 2015년 이후 최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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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도 서비스업 등의 물가를 들쑤셔놓았다. 남성 헤어컷 전문점 블루클럽의 수도권 매장은 이달부터 이용료를 1000원씩 일제히 올렸다. 물가 상승은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 또 다른 악재다. 물가가 들썩이면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가계가 지갑을 닫게 되며 소비 부진으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소득 향상을 통한 내수 증대라는 정부의 경제 목표는 난관에 부닥친다. 정부도 물가 상승 흐름에 고민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국제유가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며 “공공요금 인상을 최소화하고 농산물 등의 수급 조절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만큼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르한 페이지오글루 IMF 아시아·태평양국 과장이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가능성을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정부의 미시적인 물가 관리 정책만으로는 물가 상승 기조를 막기 어렵고, 이대로 가면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장정훈·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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