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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드러낸 ‘백제의 미소’ 금동관음보살상, 111년 만에 고국 돌아올까

중앙일보

입력

7세기 백제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으로 불리는 금동관음보살입상이 29일 모습을 드러냈다. 금동관음보살입상은 한 일본인 기업가가 소장하고 있으며,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과 문화재청, 충남 부여군 등이 환수를 추진해 왔다. 이날 도쿄에서 문화유산회복재단 등이 금동관음보살입상 소장자 측과 만나면서 처음으로 실물이 언론에 직접 공개됐다.
재단의 이상근 이사장은 “금동관음보살상은 백제금동대향로와 매우 흡사한 장식 양식을 갖고 있으며, 백제 문화가 가장 꽃피웠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보살의 미소에서 백제인의 미소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1907년에 출토된 뒤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백제금동관음보살 입상이 29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처음으로 언론에 직접 공개됐다. 윤설영 특파원

1907년에 출토된 뒤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백제금동관음보살 입상이 29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처음으로 언론에 직접 공개됐다. 윤설영 특파원

금동관음보살입상은 1907년 충남 부여 규암리 들판에서 한 농부가 쇠솥 안에서 발견했다. 당시 두 구가 발견됐는데, 모두 일본 헌병대에 압수됐다가 경매를 통해 일본인 수집가들 손으로 넘어갔다. 이 중 하나는 해방 뒤 국보 293호로 지정돼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또 하나의 금동관음보살입상은 1922년 일본인 의사이자 수집가인 이치다 지로가 사들여 소장했던 것이다. 1930년대 이후로는 전시 등에 나오지 않아 흑백사진 몇장으로만 전해져 왔을 뿐 이후 행방이 묘연했었는데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907년에 출토된 뒤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백제금동관음보살 입상이 111년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설영 특파원

1907년에 출토된 뒤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백제금동관음보살 입상이 111년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설영 특파원

1907년에 출토된 뒤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백제금동관음보살 입상이 111년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설영 특파원

1907년에 출토된 뒤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백제금동관음보살 입상이 111년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설영 특파원

1907년에 출토된 뒤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백제금동관음보살 입상이 111년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설영 특파원

1907년에 출토된 뒤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있던 백제금동관음보살 입상이 111년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설영 특파원

7세기 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높이 28㎝로,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왼손에는 보병을 들고 서 있다. 어깨와 허리를 왼쪽으로 약간 비틀었으며,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은우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등이 도쿄에서 불상을 직접 본 뒤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 교수는 의견서에서 "출토지역과 연대가 정확하게 판단되고, 일본으로 건너간 내력과 소장자가 정확하게 밝혀진 불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머리카락은 위로 틀어 올렸고, 부드럽게 늘어진 천의와 다리에 힘을 밴 삼곡의 우아한 자세, 미소를 머금은 자비로운 표정은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29일 도쿄에서 실물이 공개된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윤설영 특파원

29일 도쿄에서 실물이 공개된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윤설영 특파원

재단의 이상근 이사장은 “일본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할 경우 환수 절차가 복잡하다. 금동관음보살입상은 개인 소장품이어서 돌려받기 쉬운 환경인 만큼 환수 절차를 서두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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