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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이해찬 … 노회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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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호 35면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2004년 총선에서 단숨에 과반 1당으로 도약한 열린우리당. 그해 5월 원내대표 경선이 벌어졌다. 이해찬-천정배 의원이 후보로 나섰다. 당시 정동영 의원(당 의장)이 축사에서 “두 분 모두 저와 대학생활을 같이 시작했던 72학번 동급생”이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현장기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해찬-정동영 의원이 어떻게 동기야?’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이었다. 이 의원은 서울대 사회학과 72학번, 정 의원은 국사학과 72학번이다. 어떤 신문은 재미있었는지 노안(老顔)과 동안(童顔)을 주제로 기사까지 섰다.

14년 뒤인 2018년 7월 26일. 이해찬 의원이 민주당 대표 예비경선을 통과했다. 한 포털에서 ‘이해찬’을 검색하니 연관어로 ‘나이’가 떴다. 이미 국무총리까지 지내서인지 원로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의원의 나이는 올해 66세다. 예비경선을 통과한 경쟁자 김진표 의원이 이 의원보다 오히려 5살 많다. 얘기가 산으로 가는 것이지만, 71세의 김 의원은 경제부총리를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그간 민주당에는 상대적으로 공무원, 검사, 외교관 출신이 적었다. 만약 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민주당 계열 정당 사상 첫 공무원 출신 대표다.

중국 후한의 명장 마원(馬援)은 2000년 전에 ‘뜻을 품었으면, 궁할수록 더욱 굳세고(窮當益堅), 나이 들수록 더욱 기백이 넘쳐야 한다(老當益壯)’고 했다. 거기서 유래한 말이 ‘노익장’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60대 혹은 70 초반에 노익장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지 민망하다. ‘올드보이’란 말은 조심해서 써야 한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해찬-정동영 의원이 대학 동기인 것처럼, 노회찬-이종걸 의원이 경기고 동기동창이라는 사실이 오래전부터 화제였다. 동안 축에 드는 이 의원과 달리 반독재투사로, 노동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았던 노 의원은 38살에 경인선 전철 안에서 자리를 양보받은 적이 있다.

그는 ‘다원적 가치’를 존중하고,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을 말하던 드문 진보 정치인이었다. 62세에 떠나보내긴 일러도 너무 이르다. 진보의 가치를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소화해 대중과 교감하던 ‘소통의 대가’였기에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인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7일 영결식에서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다”고 슬퍼했다.

드루킹 일당이 정치를 오염시키며 뺏어간 것은  결국 약자들의 어떤 가능성이었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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