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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절전운동 없는 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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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40도 가까운 염천(炎天)을 피해 들어간 쇼핑센터는 후텁지근하고 어두웠다. 휘황찬란한 조명에 냉방병을 걱정할 정도인 우리네와는 달라 당황스러웠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바뀐 모습이란다. 손부채를 들고 다니는 고객들이 눈에 띄었지만, 이들의 표정에서도 큰 불만은 없어 보였다. 몇 해 전 한여름 일본 오사카 여행 중 경험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두 달 뒤인 2011년 5월, 일본 가전제품 판매량이 전년 같은 달에 비해 13%나 늘었다. 원전 가동이 멈추면서 전력 부족이 우려되자 절전형 제품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그해 여름 2010년 대비 최대 15%의 절전 의무를 지역별 전력 회사에 부과했다. 관공서나 기업체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돌렸고, 백화점은 매장 조명을 낮췄다. 총리는 매년 국민에게 절전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절전 요청은 2016년부터 없어졌다. 오히려 올해는 경제산업상이 “에어컨을 충분히 틀어 열사병에 걸리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일본인의 절전의식은 이미 몸에 뱄다. 지난해부터 원전 가동을 서서히 재개해 전력 공급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전력 소비량은 대지진 이전에 미치지 못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절전 요청이 필요없게 된 이유를 ‘국민의 에너지 절약 의식과 공급 시스템 개선’으로 꼽았다. 학자들은 이런 일본을 ‘절전 사회’로 부른다.

절전운동을 보기 힘든 것은 요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사정은 일본과 딴판이다. 연일 전력 사용량 신기록이 경신되고, 전력예비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져 아슬아슬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태평이다. 점포 문을 열고 장사하는 ‘개문 냉방’이 기승을 부리는데도 예년과 달리 단속의 손길은 느슨하다. 개문 냉방 영업을 못하게 하기 위해선 산업부 장관의 고시가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아직 고시 계획이 없단다. 지난겨울 열 차례나 했던 기업 수요감축(DR) 요청도 올여름에는 아직 없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의 빌미를 줄까 봐 정부가 절전운동에 소극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진짜 문제가 없는 건지, 일부러 여유를 부리는 건지 알 수 없어 더 불안하다.

탈원전은 편리함 대신 안전을 선택한 에너지 정책이다. LNG나 석탄 발전을 늘려야 해 전기료는 비싸지고 미세먼지는 나빠질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불안정하다. 절전운동이 필요한 상황도 올 수 있다. 당당하게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할 용기가 없어 냉가슴 앓는 건 아니기를 빌 뿐이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