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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민 전체 이익만 바라봐야 규제 개혁 성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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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의사가 화상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원격진료는 세계적 흐름이다. 일본은 1997년 도서벽지 환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했다가 2015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달부터는 약국에서의 원격 조제까지 가능해졌다. 중국에선 원격으로만 환자를 보는 인터넷 병원이 문을 열었다. 미국은 원격 의료에 보험 혜택까지 주고 있으며 병상 없이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로 환자를 돌보는 병원도 있다.

원격진료 꼬리 내린 복지장관 #시민단체도 규제개혁 걸림돌 #대통령 월례회의서 결론 내야

세계 각국은 의료 소비자의 편익과 헬스케어 산업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원격의료를 폭넓게 허용하는데 한국의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1990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18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넘지 못하고 18대와 19대 국회에서 좌초됐다. 오진 가능성이 크고, 대형병원만 유리하며, 의료민영화의 시작이라는 지금의 여당이 야당 시절 만들어낸 억울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도서·벽지 등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의료서비스를 쉽게 누릴 수 있다는 원격의료의 장점은 무시되고 있다.

지난주 원격진료 허용 방침을 밝혔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닷새 만에 말을 바꿨다.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의료가 아니라 의료인 간 원격의료를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게 잘못 전달됐다며 꼬리를 내린 것이다. 이런 이익집단 눈치를 보는 부처에 규제개혁을 맡겨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나마 기대가 되는 것은 매달 규제개혁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해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매달 하나의 주제를 집중 점검해 논의를 매듭짓겠다는 구상이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며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구호에 그쳤다. 원격의료뿐 아니라 우버 같은 차량공유서비스는 택시기사들의 반발을 넘지 못했고,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완화도 금융노조 등 기득권 집단의 반대로 진전이 없다.

기득권 집단의 반발과 책임지기 싫어하는 관료의 복지부동, 표심을 의식하는 정치권의 규제 본능을 넘어서야 규제 개혁에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촛불집회를 통해 정권 교체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는 시민단체들이 규제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39개 보건의료·노동자단체로 구성된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 위한 운동본부’는 정부의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을 ‘박근혜표 의료적폐’라고 비판했고, 참여연대는 인터넷은행의 은산분리 규제완화와 개인정보 규제완화에 반대한다.

대통령은 한때 자신을 지지했던 단체나 이익집단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과 미래의 ‘더 큰 대한민국’만 보고 나아가야 한다. 이해집단을 설득하고 국회의 협조를 얻어야 국민이 체감하는 규제 개혁을 할 수 있다.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혁명적 접근’ 없이 규제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