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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미공개 한시 10수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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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비공개 한시(漢詩) 10수가 발견됐다. 한시는 만해의 저항정신.불교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만해의 사상.문학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발견된 작품은 7언절구 형식의 '심우시(尋牛詩)' 10수로 만해가 직접 붓으로 쓴 것을 병풍으로 만들었다. 동국대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중 지난달 24일 동문 정재철(78.전 국회의원)씨에게서 기증받았다. 처음엔 만해가 불교의 수련과정을 담은 중국 불경 '심우시'를 필사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시를 앞두고 2일 국문과 교수들이 작품을 분석한 결과 만해가 '심우시'의 형식을 빌어 손수 쓴 한시란 사실을 밝혀냈다. 만해는 동국대 전신 '명신학교' 첫해 입학생이다.

동국대 김상일 교수는 "만해가 1925년 집필한 '십현담 주해'와 이 작품의 사상적 지향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이 시기는 만해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운동에 참여해 3년을 복역하고 나온 이후며, 26년 출간된 시집 '님의 침묵'을 갈무리하던 무렵"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작품은 약 80년 만에 공개되는 셈이다.

김 교수는 "불교적 깨달음을 향한 실천의지가 특유의 역동적인 표현으로 잘 형상화돼 문학적으로도 빼어나다"며 "깨달음을 향한 실천의지는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의 상징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진흙탕 속이나 물속을 마음대로 오가면서도…다시금 연꽃을 불꽃 속에 피게 하리'라고 노래한 마지막 수는 식민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만해의 의지가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라는 해석이다.

이 작품은 만해의 불교사상을 집약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생전의 만해는 자신의 거처를 '심우장(尋牛莊)'이라고 지을 만큼 '심우'의 불교적 의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우'를 주제로 한 만해의 작품은 여태 시조 한 수만 전해져왔을 뿐이다.

이 작품은 경봉(鏡峰.1892~1982)선사가 수십 년 전 불교신자 전금주(작고)씨에게 선물로 줬고, 전씨의 남편인 정재철씨가 이번에 모교에 기증한 것이다. 경봉선사는 만해가 수십 년간 친분을 쌓았던 선승(禪僧)이다. 동국대는 이 작품을 4일부터 이달 말까지 교내 중앙도서관에서 전시한다.

손민호 기자

◆ 심우시(尋牛詩)=중국 남송 때의 선승 확암 사원이 만든 것으로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현한 그림에 붙인 한시. '심우'는 소를 찾는다는 뜻으로, 소는 참마음의 은유다. 즉 심우시는 인간 본래의 면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한 시다. 많은 사찰이 대웅전 외벽 등에 '심우도'를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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