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샤워 해뿌면 시원타 카이"…에어컨 없이 폭염 지내는 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폭염 속 휴식을 취하는 경남 거제조선소 직원들의 모습(왼쪽). [독자제공ㆍ연합뉴스]

폭염 속 휴식을 취하는 경남 거제조선소 직원들의 모습(왼쪽). [독자제공ㆍ연합뉴스]

경기 군포시에 사는 신동희(39)씨는 요즘 매일 오후 백화점을 찾는 게 일상이 됐다. 쇼핑을 하러 가는 게 아니다. 6살 짜리 아이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백화점에서 해가 질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식이다.

신씨가 집에서 에어컨을 쓰지 않는 이유는 올해 12월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다. 그는 “올해만 버티고 이사 가는 새집에선 에어컨을 틀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솔직히 이번 여름은 너무 덥네요”라며 “그래도 지금 에어컨을 설치하고 연말에 다시 뜯는 수고를 하느니, 얼른 폭염이 가라앉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기 엉덩이에 땀띠가 생기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전국에서 집집마다 에어컨을 틀면서 24일 한때 전력예비율이 7.7%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아직 ‘無(무)에어컨족’으로 폭염을 나는 사람들이 있다. 국내 가정 에어컨 보급률이 80%로 추정되고 있으니, 20%는 ‘무 에어컨족’이라는 얘기다.

집 근처 백화점에서 아이와 함께 폭염을 피하고 있는 신동희씨 [사진 신동희씨 제공]

집 근처 백화점에서 아이와 함께 폭염을 피하고 있는 신동희씨 [사진 신동희씨 제공]

신씨처럼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에어컨을 달지 않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었다. 강원 춘천에 사는 고모(36)씨는 전원주택 완공을 기다리며 월세집에서 올여름을 나고 있다. 계약 때 집 주인이 ‘원형 그대로 집을 보존해달라’고 당부해, 에어컨 설치를 못 한 상태다. 에어컨 설치 때 벽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서다.

그래서 3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고씨는 부모님 집이나 마트로 ‘피서’를 간다. 최근엔 집 옥상에 미니 수영장을 만들어 더위를 식히기도 한다.

폭염이 이어지자 결국 집주인으로부터 “너무 더우면 벽에 구멍을 뚫어도 된다”는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그래서 업체에 알아봤더니 ‘에어컨 설치 문의가 폭주해 차례가 오려면 일주일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이사를 앞두고 에어컨을 달아야 할지, 고씨의 고민은 폭염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릴 정도로 무더운 대구지만, 이곳엔 ‘에어컨 무용론’을 펴는 ‘대프리칸’(대프리카 사람)들이 있다. 달서구에 사는 정선희(62)씨는 “에어컨을 틀면 몸에 힘이 더 빠져가서 파입니더(좋지 않습니다). 해 떨어지면 운동장 가가 1시간 걷고 30분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 해뿌면 시원타 카이. 대프리카 대프리카 하는데 나만의 극복방법입니더”라며 웃었다.

달성군에 사는 김상윤(60)씨도 “폭염요? 덥긴 덥지 왜 안덥겠노. 더버 죽긋습니다. 그래도 에어컨 사고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들고 못 견딜 정도는 아닌깨나 괜찮다 아인교”라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높은 층에 살고 있어서 바람이 많이 불어 괜찮다”고 덧붙였다.

반면 완전한 비자발적 ‘無 에어컨족’도 취재 과정에서 만날 수 있었다. 대구의 한 오피스텔 경비원 김모(66)씨는 “지하주차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햇볕이 뜨겁지는 않다”면서도 “그래도 너무 덥다. 출퇴근 시간에 차량 열기가 몰아칠 땐 숨이 막힐 정도”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동자. 이 사람은 "일 할 때는 안전 규정상 다시 긴팔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 옷을 벗는다고 해서 크게 시원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독자제공]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동자. 이 사람은 "일 할 때는 안전 규정상 다시 긴팔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에 잠시 옷을 벗는다고 해서 크게 시원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독자제공]

경남 거제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박모(33)씨는 냉각 장치가 달린 에어조끼를 입고 폭염을 나고 있다. 작업장엔 에어컨에 없어서 회사에서 이따금씩 공급해주는 냉각 공기를 이용해 폭염을 버틴다. 박씨는 “휴게실에 가면 에어컨이 있지만, 휴게실까지 오고 갈 시간에 조금 더 쉬는 게 낫다”며 “물을 자주 마시면서 폭염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춘천·대구=박진호·백경서 기자 isotop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