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쓰자 vs 안된다 … 대구·구미 낙동강 식수전쟁 재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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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구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시청 앞에서 구미공단 내 유해화학물질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건강영향성에대한 민·관 합동조사도 촉구했다. [뉴시스]

대구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시청 앞에서 구미공단 내 유해화학물질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건강영향성에대한 민·관 합동조사도 촉구했다. [뉴시스]

“낙동강 상류 물 좀 같이 마시자.”(대구시)

지난달 낙동강 수계서 유해물 발견 #대구 취수원 상류 구미공단서 유출 #취수원 이전 시도는 9년째 제자리 #총리도 나섰지만 해결책 오리무중

“물을 나누면 피해가 생기기 때문에 곤란하다.”(구미시)

올해로 9년째 대구시와 경북 구미시가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를 두고 반복하는 주장이다. 구미공단 아래쪽, 낙동강 하류에 취수원을 둔 대구시가 구미공단 위쪽, 낙동강 상류에 취수원을 둔 구미시에 물을 같이 취수해 나눠쓰자는 주장을 하면서 불거진 ‘대구 취수원 갈등’이다.

이 케케묵은 ‘낙동강 물싸움’이 최근 다시 불붙었다. 지난달 대구지역 낙동강수계에서 유해물질인 과불화화합물이 다량 검출되면서다. 구미공단에서 흘러나온 물질이다. 대구에선 당시 ‘생수대란’이 불거졌다. 물 대신 콜라를 사서 마시는 시민들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김경식 대구시 수자원개발팀장은 “정치권에서도 지난달 낙동강 물 사고를 계기로 취수원 갈등에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는데 아직 진척된 내용이 없다”며 “최근 국무조정실에서 대구시·구미시·환경부 관계자 등이 모여 취수원 이전에 대한 의견도 한 차례 나눴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했다.

왜 같은 낙동강 물인데, 대구시와 구미시는 같이 나눠마시지 않으려는 걸까. 취수원 이전 문제가 시작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두 지자체의 물 갈등이 왜 접점 없이 표류하는지 알 수 있다.

발단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발암 의심물질인 1, 4-다이옥산이 구미공단에서 낙동강으로 유출됐다. 낙동강은 대구시민들이 사용하는 수돗물의 67%인 53만t을 취수하는 곳이다. 대구 수돗물은 대구시 달성군 매곡리에서 취수해 매곡·문산정수장에서 정수한 뒤 시민들에게 공급한다. 매곡리는 구미공단으로부터 34㎞ 하류에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같은 달 21일 대구 매곡정수장을 찾아 정수시설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는 같은 달 21일 대구 매곡정수장을 찾아 정수시설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구미공단이 대구 취수원 상류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해진 대구시는 구미시 취수원이 있는 낙동강 상류(해평취수장)를 새 취수 이전 후보지로 꼽았다. 깨끗한 낙동강 상류 쪽 물을 나눠마시자는 것이다. 그러자 구미시가 강하게 반발했다. 대구에서 물을 빼가면 해평취수장의 수량이 줄고 수질도 나빠질 수 있다면서다. 그러면서 대구시가 취수원을 옮길 게 아니라 낙동강 수질 개선 사업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밀고 당기는 승강이가 이어졌다. 지난 2014년 국토부가 처음 나섰다. 취수원 이전이 타당한지에 대한 용역을 진행했다. 용역 결과는 일단 대구시의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구미시 해평취수장에서 하루 44만8000t(2025년 수요량 기준)을 취수해 43만t은 대구에서, 나머지는 경북 칠곡·고령·성주군에서 사용하도록 하자는 용역 결과를 내놓았다. 물은 낙동강변에 길이 55㎞의 관로를 따로 설치해 대구 매곡·문산정수장으로 옮긴다는 구상이다. 공사비는 33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구미시는 국토부 용역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며 반대했다. 취수 구역이 확대돼 낙동강 상류 쪽에 추가로 상수원보호구역을 설정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도 반대의 이유로 내세웠다.

대구시 등 각각의 입장은 여전히 접점이 없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책임 있는 대표들이 앞으로 나와 줄 건 주고, 풀건 풀어야 한다”며 “취수원을 내줘야 하는 구미시도 분명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장세용 구미시장은 최근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만나 "구미시민이 무슨 몽니를 부리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큰 오해”라면서 "낙동강 수질은 국가 책임, 취수원을 옮기려면 구미시민 동의가 필수적이다”고 했다. 이 지사는 "대구와 경북이 한 뿌리인데 물로 싸우면 안 된다. 낙동강 수질을 2급수 이상으로 끌어올려 낙동강 하류인 부산·경남까지 걱정 없이 물을 먹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도 대구시민들이 불안하다면 구미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 뒤 취수원을 옮기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4일 대구를 찾아 "중앙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순화 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대구시장·구미시장·국토교통부가 삼자대면을 통해 결론을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구시·구미시 취수원 갈등

2009년 1월    발암 의심물질 구미공단서 낙동강 유출
2012년 3월    대구시, 국토부에 취수원 이전 의사 전달

2015년 1월    구미시 본격 반대 의사"취수원 이전 안된다"

2015년 3월 ~ 2018년 3월    10차례 이상 민관협의회 등 구성해 회의

2018년 6월    낙동강수계에 신종유해화학물질(과불화화합물) 검출 확인

                                   자료 : 대구시·구미시·경북도

대구·구미=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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