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에 온 식구가 활짝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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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2년 만에 터뜨려 보는 환한 웃음으로 온 식구가 얼싸안았다.
장애를 이긴 승리의 감격은 홀어머니·누나·장애자 아들의 눈에 눈물로 흘러내렸다.
18일 오후, 장애자올림픽 탁구단체전 단식경기 결승전이 열린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한국대표 엄태형 선수(24)가 프랑스대표와 금메달을 놓고 벌인 한판승부.
『잘한다 엄태형, 이겨라 엄태형.』
엄선수가 휠체어를 뒤뚱거리며 멋진 스매싱을 날릴 때마다 관중석의 어머니 이수옥씨(52) 와 누나 경주씨(29) 그리고 장애자 재활교회에서 나온 동료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의 갈채를 보냈다.
결과는 3대2로 분패. 그러나 관중들은 엄선수의 장애를 이기고 최선을 다한 경기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고 가족들은 혼자서 탁구를 배워 1년 반만에 자랑스런 메달을 따낸 엄선수의 성취에 감격을 누르지 못하고 기뻐 환호했다.
엄선수가 척수소아마비 증세로 하반신 불구가 된 것은 2살 때인 65년.
가족 중의 하나가 불구가 되면서 가정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마저 엄 선수가 7살 나던 해 세상을 떴다. 다섯 가족의 고통스런 나날이 시작되었다. 『단칸 셋방살이에 방을 옮길 때마다 집주인들이 계약까지 끝냈다가도 태형이가 불구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방을 줄 수 없다는 거예요.』, 『지난해 5월 갑자기 탁구를 배우겠다고 하더군요. 88년에 열리는 장애자올림픽대회에 선수로 참가하겠다고요.』
어둑한 새벽 목발을 짚고 나가 오후에야 돌아오는 강 훈련. 엄 선수는 탁구 시작 5개월 여 만인 지난해 10월 전국장애자체육대회에서 거뜬히 금메달을 따냈고 금년 봄 올림픽 평가전에서도 1위를 지켜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못 받았지만 엄 선수는 독학으로 고입·대입검정까지 합격했다.
보증금 1백만 원에 10만 원짜리 월세 방에서 파출부로 4식구의 가계를 꾸려 가는 어머니, 가난과 불구의 역경을 극복하고 은메달을 목에 건 장한 아들, 부둥켜 앉은 모자의 등허리에 관중들의 뜨거운 눈길이 모아졌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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