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密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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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관형향배(觀形向背.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광해군이 1618년 명(明)나라의 요청으로 파견하는 원군(援軍) 지휘관 강홍립(姜弘立)에게 내린 밀지(密旨)다.

임금이나 신하나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여진족의 나라 후금(後金.청나라 전신)에 맞서고 싶지 않은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재조지은(再造之恩.망해가는 나라를 살려준 은혜)을 갚으라는 대륙의 주인 명나라를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불과 10여년 전 두 차례의 왜란 당시 원군을 보내 왜적을 물리쳐준 나라다. '부모의 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유학자들의 사대주의 여론도 드셌다.

광해군은 확신했다. 후금의 철기(鐵騎) 앞에 명나라는 늙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고, 조선의 원군 역시 오합지졸에 불과함을. 세자의 신분으로 두 차례 왜란을 겪으면서 국제정치에 눈을 뜬 광해군은 일찍부터 대륙의 변화에 주목해왔다. 여진족의 말을 할 줄 아는 역관을 중용, 17세기 동아시아 변혁의 주역인 여진족 수장 누루하치의 동정을 추적해왔다.

광해군은 이런저런 핑계로 명나라의 요청을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왜란 과정에 참전했던 명나라 만주지역 사령관 양호(楊鎬) 등은 조선의 사정을 꿰고 있어 피해 가기 힘들었다.

더욱이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를 이용해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중화민족의 오랜 대외전략이었다. 임금은 궁여지책으로 만주지역 사정에 정통한 지장(智將) 강홍립에게 원군의 지휘봉과 함께 밀지를 내린 것이다.

강홍립은 패색이 완연하자 예정대로 투항했다. 병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남아 대륙의 정세를 조국에 알렸다. 임금은 명나라 몰래 강홍립의 가족을 보호해줬다.

광해군은 정확한 형세판단과 중립적인 외교전략으로 재임 중 호란(胡亂)을 피했다. 그러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면서 '숭명배금(崇明排金.명나라를 숭상하고 금나라를 배척한다)' 노선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두 차례 호란을 겪어야 했다.

역사는 늘 승자가 쓴다. 인조에 의해 쫓겨난 광해군은 폭군.혼군(昏君.어리석은 임금)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된다. 미국이 요청해온 전투병 파병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한 시점에서 광해군의 밀지는 다시 읽혀야 할 대목이다. 역사는 선택이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