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만진 적 없으니 겁날 것 없다(이순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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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씨는 관심의 초점이 된 청와대 접수 기탁금의 명단훼손에 대해 사회자의 보고를 중단시킨 뒤 『항간에서는 돈을 만지면 콩고물이 떨어지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나 기탁금은 비서실로 직접 접수되고 나는 영수증만 건네줬을 뿐』이라며 『돈은 만져보지도 못했으니 감사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해명.
이씨는 또 사회자가 다른 보고사항 등을 낭독하는 도중에도 『촉각을 곤두세워 잘 들어달라』 『내 목소리가 잘 들립니까』라는 강조와 부연설명·해명 등으로 사회자의 말을 자주 중단시켰다.
이씨는 마지막 보고사항인 기타사항에서는 『이것은 내가 말하겠다』며 아예 사회자 대신 직접 해명을 하기도.
○…육영회 창립이후 첫 임시총회인 이날 회의에는 재적 대의원 2백41명중 1백25명이 참석, 의사 정족수인 3분의1선은 넘겼으나 4백석 규모의 강당 중 일부만 채워져 다소 썰렁한 분위기 속에 시작됐는데 정기총회보다 30∼40명 정도 참석자가 적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이씨의 발언을 시종 경청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앞으로 내가 떠나도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자 30초 가량 열렬히 박수를 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도.
○…간부들의 자리를 단상에 함께 마련하는 여느 회의 모습과 달리 임직원이 모두 대의원들과 함께 객석 쪽에 앉은 채 단상에는 회장 이씨와 사회자 등 2명만이 자리를 해 다소 설렁한 모습.
그러나 강당바닥엔 카펫이 깔려있고 푹신푹신한 의자가 배치돼 고급 극장을 연상케 했다.
○…잦은 해명과 부연설명으로 길어졌던 감사지적사항 보고와는 달리 대의원들의 동의를 구해야하는 의결사항 부문은 간단한 제안설명만으로 계속 통과시키는 등 빠른 템포로 진행돼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동의방식이 거수나 투표 대신 구두동의와 재청만으로 가결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동의에 나선 대의원 중 2명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이름을 「이순자」라고 말해 이씨가 『나랑 이름이 같은 사람이 많다』고 농담해 웃음.
○…이씨는 1백분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진저리쳐지는 여론재판』 『무책임하고 비열한 폭로성 보도』 『터무니없는 풍문』등의 표현으로 그 동안 불리한 보도를 해온 언론에 대해 시종 강한 불만을 표출.
이씨는 또 『7년 반보다 긴 7개월의 고통』 『절망에 가까운 슬픔』 『가장 속상한 대목』등으로 자신의 불편한 심경을 토로.
○…이씨는 사퇴의사와 심경을 밝힌 인사말을 대학 노트크기 6페이지에 타자글씨로 빽빽이 담은 유인물로 제작, 회의 전에 전 참석자에게 배부한 뒤 빠른 속도로 낭독.
연설문중엔 특히 「국민여러분」표현을 많이 썼고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표현을 5차례나 사용했으며 「확충」「통감」「부덕」 등 비교적 발음이 어려운 한자가 많이 섞여있었으나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읽어 사전에 상당한 준비를 해온 느낌.
○…이씨는 육영회 2층 식당에 마련된 기자 회견장에서 보도진들이 회장직을 떠난 소감을 묻자 『그만 두고 나니까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지금까지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나 여러분을 일부러 피한 적이 없다』고 대답.
이씨는 이에 앞서 『저는 이런 경험이 없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모르겠다』 『장소가 변변치 못해 미안하다』고 인사.
이씨는 그러나 보도진들이 본격적인 질문공세를 시작하자 『심신이 몹시 피곤하고 국민들이 알고자하는 사항은 5공 비리특위에서 다뤄지고 있는 부분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한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씨는 이날 오후 4시10분쯤 육영회를 떠나기 전 몰려든 50여명의 보도진이 승용차를 가로막고 『국회에 출석할 것인가』라고 묻자 한참 망설이다 『출석하겠다. 언제 어디에서든지 진실을 밝힐 테니 걱정 말라』고 난처한 듯 웃음을 지으며 말한 뒤 황급히 차를 타고 출발.
이씨는 차를 타기 전 사진기자들과 악수를 나누기도 하는 등 애써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은빛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별도의 호위차량 없이 육영회에 도착한 이씨는 보도진의 플래시가 터지자 활짝 웃는 표정을 지었고 영접 직원들에게는『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등 여유를 보이기도.
이씨는 그러나 5층 강당까지 올라 가면서는 굳은 표정을 지어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기도.
○…참석 대의원들은 회의시작 직후 방송 카메라가 자신들을 비추자 고개를 돌리며 『비켜달라』 『기자들 나간 다음에 시작합시다』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참석자들은 이씨가 회장 인사말을 읽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경청하는 모습이었고 비리를 완강하게 부인하는 대목에서는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또 이씨의 사퇴에 대해 대의원 3명은 회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잇달아 발언권을 얻어 『사표를 누구에게 냈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계속 더 하셔야 한다』며 사퇴를 만류했고 이때 일부 참석자들은 『동의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이씨는 시교위 지적사항 중 육영회 명의가 아닌 가명 또는 개인명의로 은행에 예금된 청와대 접수분 9건에 대해 『가명은 모두「이육영」「육영자」등 언뜻 들어도 육영회 돈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을 썼다』고 해명.
이씨는 또 예산에 넣지 않고 부지를 매입했다는 지적사항에는 『좋은 땅이 있는데 총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먼저 계약하고 차후에 승인을 받았던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를 안 해줘도 우리회원들만 이해 주면 그것으로 마음이 편하다』고 참석자들의 이해를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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