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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육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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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양 밥을 빌어 언덕을 오르는 석가모니의 등뒤에는 석양이 비끼고 있었다. 언덕위 누각에서는 출가전의 아내 「아쇼다라」가 어린 아들 「라홀라」의 손을 잡고 석가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오시는 분이 너의 아버지시다.』 아들 「라훌라」는 달려 내려가 절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 그를 데리고 니그로다 동산으로 올라 「사리푸타」에게 분부한다.
『「라훌라」에게 계를 일러주어라.』 「사리푸타」는 「라훌라」의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힌 다음 삼귀의를 세번 외게 하고 사미십계를 일러주었다.
그로부터 2천5백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승려는 머리를 깎아야 승려인 것으로 알아왔다. 지금도 승려의 인문의식이 되고 있는 사미십계에서는 출가의 예의가 엄숙하게 진행된다.
설계당 중앙에 분향하고 3배의 절을 올리고 계송을 외면서 출가의 허락을 간청한다.
또다시 3배 간청…. 몇 번의 의식을 거친 다음 드디어 행자가 물그릇과 삭도를 들고 나타나 계송을 읊는다.
『부처님이 일찍이 꿈꾸시기를 무명초가 몇 년이나 무성하게 자랐던가. 이제 금강봉을 향해 떨어지니 광명천지가 무한히 빛나 도다.』 『머리를 깎아도 되는가.』 세번 묻고 세번 답한 다음 무성히 자란 무명초(모발)가 깎여나간다. 그 다음 『산목숨을 죽이지 마라. 주지 않는 것은 갖지 마라…』의 오계가 이어진다. 이것이 수계작법의 의식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가에서 머리털은 총명함을 흐리는 잡초로 보았다. 속세와의 단절을 의미할 것 같고 또는 인도라는 더운 지방에서의 수련을 위한 위생상의 효과를 노렸을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 삭발의 의식이 곧 불문의 첫걸음이 되고 동시에 세속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오랜 불교의식이라는 것이다. 또 오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살생금지조항 또한 육류를 먹지 않는 불가의 오랜 음식문화로 내려오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은 종헌·종법개정을 통한 근본적인 개혁과 아울러 승려도 머리를 기르게 하고 내식도 허용하는 등의 과감한 개혁시도를 검토한다고 했다. 종교도 사회관습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지만, 종교 자체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어떻게 지켜질 것인가. 탈속의 의미와 약속, 그리고 승려 자신들의 탈속을 위한 제어장치로서 가사와 삭발이 갖는 의미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지 사뭇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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