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보고 문학이 주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80년대의 우리 문학지도는 어떻게 그러 질까? 흔히 전환기로 불리는 80년대의 마감을 1년 남짓 남겨 둔 시점에서 80년대 문학의 특성을 밝히려는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현대시학』10월 호는 문학평론가 이승훈·김재홍씨의 대담 80년대 우리 시를 정리한다는 특집으로 싣고 있고 『문예중앙』가을호는 이승우·이창동·김석희씨 등 80년대 신예작가 세 사람의 특별좌담 오늘의 소설과 작가의 자리를 싣고 있다. 또『문학사상』은 11월 호에서 권영민·이승훈·조태일씨의 좌담으로 80년대 시의 경향·특성·전망 등을 조망하는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1년간 시리즈로 80년대 문학을 정리하려 하고 있어 현대문학사에서의 80년대 문학 자리 매김 작업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현대시학』과『문예중앙』에 실린 좌담과 평론가들의 의견을 중심으로80년대 문학지도의 윤곽을 그려본다.
80년대 문학은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한 현실대응보다는 직접 현장으로 달려간 현장보고 문학이 전면에 나선 시대였다.
70년대 소설시대가 80년대 시의 시대로 넘어온 중요요인을 현실에 대한 문학의 직접 대응이라는 80년대 특성에서 찾으려는 논의가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장르의 특성상 시는 즉각적으로 현실에 대응이 가능하나 소설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시는 내용 면에서는 민중 지향적인 것이, 양식 면에서는 해체 지향적인 것이 주류를 이룬다(이승훈).
이 땅의 구조적 모순과부조리를 비판하면서 이 시대의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생명력을 묘 파해 가는 민중시는 84년 노동자 시인 박노해가『노동의 새벽』을 냄으로써 전환점을 이룬다.
80년대 중반 이후 민중시들은 시대적 당위성과 이념적 설득력이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시로서의 예술성이 따라가지 못한 점과 진보적 민중시론과 작품사이에 괴리현상을 보인 것도 사실이어서 이 분야에 『운동성과 예술성의 탄력 있는 조화』(김재홍)를 과제로 남겼다.
한편 기존시법을 부정하고 과감히 해체함으로써 정신의 자유로움과 함께 사물 이면에 숨겨 있는 진실을 탐구하려는 실험 시는 70년대 말 황지우에게서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 박남철 김영승 강정일 윤성근 등으로 이어지며 80년대 시에 탄력과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80년대 초반의 민중시·실험 시 등의 위세에 눌려 위축됐던 서정시도 전통서정성을 고수하는 한편으로 시대에 맞는 감수성을 개발, 역사의식을 서정적인 예술의식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로 80년대 서정을 개척해 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도종환·서정윤 등 이른바 베스트셀러 시인들이 등장, 시의 시대다운 외적 호황도 보였다.
시에 비해 소실은 80년대 들어와 상대적으로 위축됐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소설 위축 의원 인을『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작가들이 시대적 부채 감을 느꼈기 때문』(이남호), 『70년대는 창작과 비평이 서로 짝을 이뤄 상승작용을 보였으나 80년대는 실천비평은 위축되고 이론비평이 세력을 떨쳐 비평과 창작이 괴리되면서 창작이 비평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기 때문』(권영민)이라는 데서 찾고 있는 평론가들이 많다.
민족문학진영에서『민중적 민족문학이 노동자의 주도하에서 전선 적 전망을 구축하고 소시민적 민족문학은 노동자헤게모니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연합적 전망에 선다』 (김명인)는 민족문학 주체논쟁을 일으키며 노동자와 반영 론에 더욱 중점을 두는 문학론을 이끌고 간 것도 소설위축의 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성을 띤 문학론에 작가들이 너무 덜미 잡혀 자기 문학세계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소설이 이데올로기를 보충해 주는 역할 밖에 못했다』(이남호)는 지적도 나왔다.
8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민중문학론의 전면대두로 인해 70년의 소설이 현실을 소설적 공간에서 이야기한데 비해 80년대 소설은 소설적 공간을 무시하고 현장으로 달려가 보고하는 르포기능에만 만족했다는 이야기다. 또 현장성에만 매달리다 보니 크게 보아 분단문학에의 경사라는 소재주의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평론이 소설을 소실로 안 본다. 소실을 무엇의 반 영물로 보고 그러다 보니 작품에 대한 평가와 논의는 정치적 태도의 표명으로 되돌아간다』(이창동), 『열려 있는 소설을 도그마로 평론이 닫아 버린다』(김석희)는 등 민중문학론과 소설 사이의 괴리를 우려하는 소리가 80년대 신예작가들에 의해서도 나 왔다.
또 소설이 사화과학으로 부터 문학으로서의 자율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반성도 일고 있다.
한편 이러한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80년대의 의미를 고민스럽게 천착, 소시민적 삶을 형상화시키고 있는 양귀자·박영한·김원우·임철우씨 등 이 80년대 소설의 수확으로 기록될 것 같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