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드루킹 특검도 깜짝 놀란 검경의 부실수사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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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최근 확보한 압수 물품은 드루킹 사건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엉터리 수사 행태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특검팀은 느릅나무출판사(일명 ‘산채’) 인근의 한 창고 컨테이너에 ‘드루킹’ 김동원씨와 댓글조작팀이 사용했던 컴퓨터와 노트북, 각종 서류 등이 가지런히 보관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모두 압수했다. 출판사 건물 1층의 쓰레기 더미에선 21대의 휴대전화와 유심칩 등을 확보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경찰이 이미 한바탕 수사를 벌였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압수수색에 나섰는데 증거물들이 차곡차곡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경찰과 검찰이 수사의 기본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범행 현장 압수수색-관련자 출국금지 및 계좌추적-범죄 입증 가능한 증거 및 진술 확보-소환 뒤 사법처리라는 수사의 ABC 중 어느 하나 지킨 것이 없었다. 지난해 대선 때 댓글조작이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입증하는 데 가장 유용한 자료를 지척에 두고도 눈을 감은 것은 직무유기이자 직권남용에 다름없는 것이다. 이러고도 “경찰의 자존심을 걸고 수사를 했다”는 이주민 전 서울경찰청장의 말을 믿으라는 말인가.

검찰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상대로 신청한 계좌 압수영장을 이상한 법 논리로 계속 기각해 수사의 타이밍만 놓치게 한 것이다.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검사는 알짜 보직으로 영전을 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검찰과 경찰은 당시 수사 관련자들에 대한 감찰조사를 벌여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실익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특검에 이은 또 다른 재수사에 대비해서라도 진상조사는 벌여 놓아야 한다. 특검도 특검법을 적극 해석해 증거 조사에 눈감았거나 부실 수사를 사주한 검찰과 경찰 간부들에 대한 수사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