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 구멍이 되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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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실질적인 북한의 비핵화 전까지 대북 제재를 철저히 유지한다.” 북한이 비핵화에 속도를 내지 않는 상태에서 한·미·일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원칙이다. 국제 제재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실효성 있는 압박 수단이어서다.

이런 판국에 북한산 석탄이 선박 환적을 통해 한국에 수입됐다는 충격적인 발표가 나왔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연례보고서 수정본’에 따르면 지난해 7~9월 북한 원산항과 청진항에서 석탄을 실은 북한 선박이 러시아 홀름스크항으로 가 하역했고, 이 석탄을 파나마 및 시에라리온 선적의 배 두 척이 싣고 10월 초 인천과 포항으로 왔다는 것이다. 두 배에는 약 60만 달러어치인 9000t이 실렸으며 이 석탄은 국내에 유통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난해 8월 유엔 결의 2371호에 따라 석탄을 포함한 북한산 광물의 수출입은 물론 수송도, 환적도 금지된 만큼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17일 “유엔보다 우리 정부가 먼저 인지했고, 국제 공조를 통해 적발했다”며 “현재 한국 수입업체를 관세법에 따른 부정 수입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강조하는 대로 이번 사건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 및 민간 업체 차원의 유엔 결의안 위반이다. 또 업체가 북한에서 석탄을 선적할 시점이 유엔 결의안이 도출될 언저리란 점에서 국제사회에 해명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협조를 구해야 할 북핵 문제의 당사자이자 최대 피해자다. 여기에다 문제의 선박들은 올 2월에도 국내 항구를 드나든 것으로 알려져 우리의 대북 제재 의지가 의심받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해당 업체들을 엄중 조사해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히 처벌하고, 단속 시스템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 비핵화에 힘을 모아 달라고 국제사회에 얘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