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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홍준표의 은퇴 아닌 퇴장…패장들의 정치학

중앙일보

입력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이 지난 12일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하루 전인 11일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도 미국 행을 알렸다. 두 사람 모두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정계 은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서울시장 후보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며 취재진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서울시장 후보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며 취재진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정치사에 이름을 남긴 유력 정치인들은 대부분 한 번 이상 패배의 쓴맛을 봤기에 퇴장하는 모습도 한 번 이상은 보여줬다. 이들은 정계 은퇴, 2선 후퇴, 현업 유지 등 각자의 선택에 따라 권토중래를 모색했다.

①‘충전식’ DJ 모델

대선 등 각종 선거에서 패배한 후 정계 은퇴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실제로는 충전의 시간을 갖는 유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모범적인 성공사례다.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12월 14대 대선에서 패한 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시민이 되겠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1월 영국으로 떠나 그해 7월까지 머문다. 이후 1994년 1월 아태 재단을 설립해 정계복귀 운을 띄운 후 1995년 7월 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정치 일선에 복귀한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상임선대위원장도 2014년 7ㆍ30 재ㆍ보궐 선거에서 수원 팔달에 출마했다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전남 강진 만덕산의 토담집에서 2년 2개월간 칩거하다 2016년 10월 정계에 복귀했다. 국민의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지만, 안철수 후보에게 밀려 패배하며 그의 재기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DJ 유형은 정계 복귀 명분이나 충분한 세력이 없으면 선택하기 힘든 유형이다. DJ는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과 동교동계라는 정치 세력이 건재해 복귀가 쉬웠다. 손 전 위원장은 개헌을 명분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세력 등이 부족했다. 그가 복귀할 때 손학규계 중 탈당한 이는 이찬열 의원뿐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원 시절인 2013년 11월 18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국연설을 듣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의원 시절인 2013년 11월 18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국연설을 듣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②‘2선후퇴형’ 문재인 모델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2월19일 대선에서 패한 후 공개 행보는 자제했지만 정계 은퇴 등은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며 잠시 2선으로 후퇴해 조용한 정치활동을 선택했다.

문 대통령은 2013년 11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2017년 대선에선 어떤 역할도 회피하지 않겠다”며 대선 재도전 뜻을 밝히며 정치 전면에 다시 나선다. 2015년 2월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당선되며 대선 도전 출마 기틀을 다졌다. 문 대통령 외에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97년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 선언 없이 물러나 있다가 8개월 만에 당 총재로 복귀하는 행보를 했다.

이번 대선 후 패배한 패장들도 대부분 문재인 모델처럼 2선 후퇴를 선택했다. 다만 기간이 매우 짧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대선 패배 41일, 안철수 전 의원도 대선 패배 86일 만에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유승민 전 대표도 당내 의원들의 한국당과의 통합 움직임 등이 본격화되자 대선 패배 5개월 만인 2017년 9월 “바른정당의 대표가 되어 위기에 처한 당을 살리겠다”며 출마해 정치 일선에 다시 나섰다. 유 전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 참패 후에도 당 대표직을 사퇴한 후 공식 행보를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주요 정치인 복귀까지 코스와 소요 기간. 박경민 기자

주요 정치인 복귀까지 코스와 소요 기간. 박경민 기자

③‘백의종군형’ 이인제 모델

대선 패배 등 패장이 된 후에도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정치 활동을 곧장 재개하는 방식이다. 이인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 전 의원은 1997년 국민신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패배한다. 하지만 이 의원은 패배 당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백의종군하면서 내년 5월 지방선거에 대비하겠다”고 선언한다. 다만 이 전 의원은 “선거에 내가 뛰겠다는 것은 아니며 당 조직을 정비한 뒤 유능한 인재를 발굴, 당선시켜 지역발전의 일꾼으로 만들 생각”이라며 국민신당 고문으로 지방선거를 치른다.

이후 이 후보는 16대 총선(2000년), 17대 총선(2004년), 17대 대선(2007년) 등 매 선거에 빠짐없이 나섰다. 이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과 2018년 6ㆍ13 지방선거까지 출마했지만 끝내 패했다. 복귀에 별다른 명분이 필요 없지만, 충전 기간 등을 거치지 않고 정치 자산을 지속적으로 소모해 대선 등 큰 선거에 재등판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안 전 의원도 지난 대선 패배 후 1년 만에 서울시장 선거에 직접 출마했지만 3위에 그치며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놓고 당내에서는 “대선 패배 후 1년 만에 다시 선거에 등판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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