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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음모 vs 기무사의 월권 … ‘촛불계엄’ 문건 진영 갈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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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호 06면

“국방부와 청와대 간 갈등 없다.”

여권·인권단체서 문건 공개 후 #문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확산 #장관 참고용 vs 계엄령 시행계획 #문건 작성 목적이 가장 큰 쟁점 #일각선 “기무사 개혁 동력 삼으려다 #통제 불능 논란 상태 빠졌다” 주장 #13일 특별수사단 출범한 가운데 #군 안팎“흐지부지 종결될 수도”

국군기무사령부의 ‘위수령·계엄령 검토’ 문건 논란 와중인 13일 청와대에서 낸 논평의 일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계엄령 문건’ 보도를 보면 국방부와 청와대 간 갈등은 물론 보고를 언제 했느냐,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 등등이 부각되는데 이는 전형적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식’의 보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은 최근 언론 보도 전까지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 일도 있다.

이렇듯 기무사 논란은 ‘비밀’ ‘기밀’로 가득한 기무사는 물론 청와대·국방부를 넘나들고 있다. 한쪽에선 “쿠데타” “내란 음모”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기무사의 월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사시 대비하는 게 군”이라고 맞선다. 이들 사이 단층선은 묘하게 우리 이념 갈등선과 일치한다.

이런 가운데 13일 특별수사단이 출범했다. 이르면 한 달, 길어도 120일 이내 수사 결과가 나온다. 그렇더라도 논란이 종결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건설적 논의보다 이념적 잣대로 바라보는 경향이 커졌다”며 “기무사 논란도 이미 진영 논리로 보는 사안이 됐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①논란, 어떻게 커졌나

기무사 논란은 올 3월부터 정치권·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그러다 이달 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란 문건을 공개하고 다음날 군인권센터가 동일 문건을 근거로 “명백한 쿠데타 계획이며 관련자는 모두 형법상 내란음모죄를 범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확산됐다. 10일 인도를 방문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위중함·심각성·폭발력을 감안’해서 특별수사단을 꾸리라고 지시한 건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②문건엔 어떤 내용 담겼나

‘2017. 3. .’라고 씌인 문건은 ▶현상 진단 ▶ 비상조치 유형 ▶위수령 발표 ▶계엄선포 ▶향후 조치 등 5개 분야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정치권이 가세한 촛불·태극기 집회 등 진보(종북)-보수 세력 간 대립 지속” "일부 보수 진영에서 계엄 필요성 주장하나 국민 대다수가 과거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 계엄 시행 시 신중한 판단 필요”란 상황 인식과 함께 ‘탄핵 결정 선고 이후 전망’에선 “탄핵심판 결과에 불복한 대규모 시위대가 서울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청와대·헌법재판소 진입·점거 시도하고 정부(경찰)가 대규모 시위를 차단하면 국민 감정 폭발하고 동조 세력이 급격히 규합되면서 과격 양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기무사 논란이 커진 후 국방부 측에서 “탄핵 기각을 가정한 검토”라고 해명한 배경이다.

문건엔 위수령·계엄·비상계엄 등 비상조치 유형과 시행 요건, 절차, 편성 등에 대한 기술이 담겼다. 일부 항목에 대해선 첨부 내용도 달렸는데 그중엔 ‘계엄임무수행군’ 항목도 포함됐다. 여기엔 가용병력에 기계화사단(6개), 기갑여단(2개), 특전사(6개+)가 언급됐다. 군인권센터는 이걸 가지고 “탱크와 장갑차로 지역을 장악하고 공수부대로 시민들을 진압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③참고 문건인가 실행 문건인가

가장 쟁점이다. 실행을 위한 준비계획이라면 군사반란 혹은 내란음모로 연결 지을 수도 있어서다.

국방부와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 측의 해명을 종합하면 이 문건은 이철희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 생산됐다. 2016년 11월 이 의원이 위수령에 대한 질의를 하자 합동참모본부에서 두 달여 검토해 이듬해 1월 초 답변했다고 한다. 이 의원이 추가 질의하자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2월 중하순 검토했는데 한 전 장관이 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데 좀 부족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이에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우리도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이 문건이란 것이다. 이후 한 전 장관이 주재한 국방부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기무사 문건을 보고받은 직후) 문건 유출 시 사회적 파장이 크고 군이 오해받을 소지가 있으니 모든 논의를 종결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한 전 장관 주변에선 “공식회의를 포함, 이런 과정에서 생산된 문건이 어떻게 쿠데타 실행문건일 수 있느냐”고 말한다. 한 인사는 “장관 개인 참고용”이라고까지 말했다.

반면 문건에 등장하는 ‘국민들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하여 대응하고 상황 악화 시 계엄(경비→비상계엄) 시행 검토’ 등의 표현을 고려하면 실행계획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여권에선 당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나 청와대 경호를 맡은 박흥렬 경호실장, 더 나아가 황교안 대통령직무대행에게도 보고됐을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12·12 때도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의 해명이) ‘선제적 자위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고 주장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평화적인 집회가 이뤄졌었고 군사적인 진압으로까지 나갈 개연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군사력 진압 계획 자체가 반헌법적”이라고 주장했다.

④기무사가 계엄 검토할 수 있나

군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외교안보 전문가도 “기무사가 그럴 수 있는 권한 범위 안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거나 “월권”이라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그러나 “기무사가 이런저런 일을 해온 건 사실”이라고 했다. 보수 정권 때는 물론이고 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가 되지만 관행인 측면도 있다는 주장이다.

⑤청와대는 언제 알았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문건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올 3월 16일이다. 군인권센터 등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보고했다는 것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송 장관은 당시) 외부 전문가에게 해당 문건에 대한 법리 검토를 의뢰해 이를 바탕으로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당시 법무관리실이 법리 검토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12일 “당시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이철희 의원이 질의한) 위수령 관련 문건을 작성한 사안으로 감사관의 감사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법무관리관이 법리 검토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 외부 전문가에게 맡긴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청와대도 4월 초 송 장관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송 장관의 보고 여부에 대해 “칼로 두부 자르듯이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사실 관계에 회색지대 같은 그런 부분이 있다”고 애매하게 말한 일이 있다. 문 대통령의 문건 인지 시점도 인도 순방을 떠나기 전으로 전해졌다.

⑥청와대·송영무 갈등설은 왜 나오나

문 대통령이 10일 특별수사단을 꾸리도록 지시하면서 송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해서다. 또 청와대 참모들이 자신들의 건의에 의해 그런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도 공개했다. 장관 질책으로 해석될 법한 내용이었다.

김의겸 대변인은 13일 국방부와 청와대 간 갈등설을 부인했다. 국방부 주변에서도 “문 대통령의 송 장관에 대한 신임은 여전하다. 이번 건은 송 장관과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 착오”란 얘기도 나온다. 이달 말로 예정된 기무사 개혁안 발표 때 동력을 얻기 위해 문건을 공개토록 했는데 논란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커졌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청와대도 나 몰라라 해서 송 장관이 난감해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장 출신의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청와대가 사전에 알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외국에서 독립적 수사단을 꾸리라고 지시할 정도로 화급한 듯 다룰 일이었느냐”며 “이토록 정치화한 배경은 기무사의 힘을 빼고 군을 문민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⑦수사는 어떻게 진행되나

13일 출범한 특별수사단은 육군·기무사를 제외한 해·공군 소속 검사 15명과 군검찰 수사관 등 31명으로 구성됐다. 특별수사단은 기무사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도 조사한다. 특수단장은 전익수(대령·법무 20기) 공군본부 법무실장이다.

특별수사단 측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철저히 수사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과 한 전 장관, 김관진 전 실장 등이 우선 수사 대상이다. 경우에 따라선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조사할 수도 있다. 현재 민간인 신분의 조사 대상은 검찰과 공조 수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에선 그러나 “이번 수사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보고 누락 사건 때처럼 처리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 문 대통령이 사드 발사대 4기 배치에 대한 보고를 누락했다며 “국기문란”이라고 강하게 질타했으나 결국 위승호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이 전역하는 것으로 끝났다.

고정애·이철재·박성훈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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