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과 차별화? 레임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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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린우리당 김한길,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와 조찬 회동을 갖고 "여당이 (사학법 재개정에) 양보하면서 국정을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행보가 필요한 때"라며 "대승적 차원에서 여야가 국정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문제를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집권 4년차. 여당은 왜 노 대통령의 권고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을까.

◆ 강금실 후보도 반박=당내 대선 예비주자들이 "이제는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할 시점"이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의장은 '사학법 사수' 입장을 강조함으로써 나름대로 승부수를 띄웠다는 관측이다.

당 일각에선 "대선 예비주자인 정 의장이 당의 입장을 내세워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운 것이 정치적으로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말한다. 재야파의 수장인 김근태 최고위원도 "당은 당의 입장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에 없이 단호한 입장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당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묵시적 협력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20%대에서 맴돌고 있다. 그래서 "의원들의 기류를 잘 알고 있는 당 지도부가 의원총회를 소집한 것도 일종의 '반란'을 유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돈다.

당 외곽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29일 긴급 호소문을 통해 "사학법 개정안은 옳았다"고 당 입장에 동조했다.

◆ "부메랑이 돼 돌아갔다"=이 같은 현상은 느슨해진 대통령의 장악력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당초 당과 청와대는 사학법 문제가 풀리지 않자 노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기로 '작전'을 짰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달 29일 회동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야당이 아니라 여당을 설득했다.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라 했다. 지난달 29일 의총에서 대부분의 의원은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노 대통령의 권고를 거부하는 발언을 했다. 이들이 격한 반응을 자제한 것은 "너무 강경하게 반발하면 레임덕 얘기가 나올까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당내에선 "대통령이 지방선거 후 탈당을 결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고정 지지층 이탈을 우려한 것도 반발의 원인이 됐다. 여당은 사학법 개정안을 시행하기도 전에 후퇴하는 것은 '개혁 정당'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 관계자는 "당의 결정은 추락한 지지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선에서도 개혁 정당의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자 "노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온 당청(黨靑.당과 청와대) 분리 원칙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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