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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고' 법사위…발목잡기와 견제의 내로남불

중앙일보

입력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의 ‘화약고’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였다. 여야는 법사위원장 자리와 법사위 개선을 놓고 막판 진통을 겪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법사위원장 자리가 배분될 것으로 기대했던 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맞붙었다. 여기에 국회의 ‘상원’ 역할을 하는 법사위의 위상과 역할을 변화시키자는 주장이 나와 여야 간 2차 기 싸움이 벌어졌다.

왼쪽부터 평화와 정의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원구성을 위한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후 국회 일정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왼쪽부터 평화와 정의 장병완,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원구성을 위한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후 국회 일정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목잡기 vs 여당 견제

법사위를 둘러싼 다툼이 치열한 것은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의 체계ㆍ자구 심사를 법사위가 한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한다. 법사위가 ‘작은 본회의’ 또는 ‘상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권은 1951년 도입됐다. 무소속 엄상섭 의원이 “법률용어 및 조문체제의 통일 등을 고려해 본회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으로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작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염두에 둔 게 아니었지만 이후 역할이 변했다. 제17대 국회부터 국회의장은 여당에, 법사위원장은 제1야당에 배분하는 것이 관례화됐다. 법사위는 국회의장 또는 여당을 견제하는 수단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됐다.

17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은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야당이던 한나라당 소속 최연희 법사위원장이 문자 그대로 회의장 문을 잠가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19대 국회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상임위를 통과해 올라온 북한인권법 처리를 고의로 지연해 ‘몽니를 부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위원장은 여당인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이 추진하는 각종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시키지 않아 당시 여당이 ‘이상민 방지법’이라는 명칭으로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월권 vs 법리적 전문성

원 구성 협상 중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일 “어느 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하자”고 말했다. 법사위가 체계ㆍ자구 심사 범위를 과도하게 행사해 법안 내용을 바꾸거나, 계류시키는 사례가 반복되니 아예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대 국회에서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법사위의 월권 논란이 일었다.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된 이 개정안은 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전체 매출액의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를 넘겨받은 법사위가 체계ㆍ자구 심사 단계에서 과징금 부과기준을 ‘사업장 매출의 5%’로 하향 조정해 본회의로 넘겼고 이는 그대로 의결되었다. 당시 환노위원들은 이를 “법사위의 월권”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법사위 권한 축소를 반대하는 측에선 “위헌법률의 입법 가능성과 다른 법안 내용과의 충돌 등을 차단하는 조정 작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20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원장이었던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각 상임위가 자신의 소관 부처 입장만을 듣다 보니 상임위 법안들이 상호 입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원들이 모두 법적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만드는 게 아닌 만큼 법안 내용이 과잉금지의 원칙, 평등의 원칙 등 헌법 정신에 맞는지 법리적으로 확인ㆍ조정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내로남불

역대 국회에서 이어져 온 법사위 논쟁의 특징은 여야가 바뀔 때마다 입장이 180도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여당 시절엔 야당 몫인 법사위의 권한을 축소하자고 했다가 야당이 되면 다시 권한 유지를 주장했다.

민주당은 여당 2년 차인 올해 초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기능을 삭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한국당 측은 “아주 독재적이고 오만한 태도”라며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한국당은 여당이던 2015년엔 김성태 의원이 유사한 개정안을 낸 적이 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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