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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치를 묻는 신선한 성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자기자신의 얼굴을 정확하게 알고있는 사람이 있을까?
거기서 더 나아가 자기얼굴이 지닌 값을 아는 사람은 또한 있을 것인가.
놀라운 일이지만 가장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자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시인은 가끔씩 그런 자기를 되돌아보며 시름에 잠긴다.
익숙해 있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믿지만 사실은 별로 정확히 자기를 알지 못하는 낯선 한 존재라는 자기 깨달음에 이를때 시는 지극히 철학적인 또는 역사학적인 질문으로 된다. 시가 때로는 철학적이며 역사적이라는 까닭이 거기 있을 터다.
김광규의『대장간의 유혹』 (문학사상 9월호) , 이태수의『나무 곁에 서서』『안개세상』 (한국문학 9월호), 그리고 조태일의『국토, 54-58』연작시와 이지엽의『처용 일기·여섯-세개의 스넵』(한국문학 9월호), 박승철의『산I』(세계의 문학 88년 가을호) 을 이 달의 좋은 시편들로 나는 읽는다.
나의 존재를 시작케 하였고 그것을 지탱하며 일상의 그늘에서 자기 값을 확인케 해주는 어머니의 도덕적 표상을 드러낸 조태일의 다섯 편『국토』연작 시편도, 분단된 국토의 이쪽에 서서 잃어버린 고향하늘을 물결처럼 읊은 이지엽의『처용 일기·여섯』도, 오묘한 산의 조화를 읊은 박승철의『산I』도 시로써 사람의 마음을 애타게, 혹은 서럽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어 보인다.
그런 가운데서 김광규의『대장간의 유혹』과 이태수의『나무 곁에 서서』는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들 존재의 값에 대한 눈뜸을 부추기고 있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속에/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모루 위에서 벼리고/숫돌에 갈아/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땀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낸/꼬부랑 호미가 되어/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고 읊은 김광규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이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허망의 나락에서 속절없이「플래스틱물건」처럼 혹은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쓰임새가 뚜렷한 낫이나 혹은 호미로 자기 존재 값을 환치시켜 마음의 심연을 가다듬고 있다.
이태수 역시「나무들이 깨금발을 하고 있는 동안/대지는 풋내 나는 가슴에/소꿉놀이를 하는 나와, 턱수염이 꺼끌한/나를 부드럽디 부드럽게 끌어당기고 있다」(『나무 곁에 서서』)고 읊으면서 삶의 고개 중턱에 서서 내려다 본 자기 존재의 벼랑이 깊음을 확인한 다음 「저무는 강가에 서서/부질없이 눈물을 글썽이는/내 마음아. 가련한/내 마음의 그늘아.」(『안개세상』)하고 자기 값을 묻고 있다. 자기환상의 일상적 타성에 빠져 자문을 모르는 이 세상 바닥에서 이렇게 존재 값을 묻는 치열한 시인들의 마음은 귀해서 신선하게 돋보인다.
정현기<연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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