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이래 놓고 세금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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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전북 김제에 사는 이모(75)씨는 1년간 1980번 병원에 갔다. 많을 때는 하루에 10개 병원을 이용했다.

약값을 포함한 이씨의 총 진료비는 2800만원이 넘는다. 이씨는 의료급여 대상자여서 진료비는 한 푼도 안 냈다. 모두 정부가 내준다. 이씨뿐만이 아니다. 1만일치가 넘는 약을 타간 환자가 있는가 하면, 700건이 넘는 허위 기록으로 이속을 챙긴 병원도 있다.

저소득층 진료비의 85~100%를 정부가 지원하는 의료급여의 실상이다. 의료급여 진료비는 지난해에만 3조원이 넘었다. 이렇게 막대한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제도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원 대상이 늘어난다는 홍보는 열심히 했다. 그러나 실태 파악은 뒷전이었다. 예컨대 울산의 의료급여 대상자는 광주보다 50% 이상 더 많은 진료비를 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에게 이유를 묻자 "분석 중"이라는 답변뿐이었다. 두 지역만 집중조사했다면 효율적인 관리 방법이나 돈 새는 구멍을 이미 찾았을지 모른다.

복지부는 27일 의료급여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제도를 도입한 지 30년 만이다. 정부의 개혁 방안은 실태를 조사하고 악용 사례를 솎아내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영 미덥지 않다. 의료 급여환자의 진료비를 연말이나 돼야 알 수 있는 현 시스템으로 악용 사례를 얼마나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안을 내놓고 싶지만 준비가 덜 됐다"고 말한다.

의료급여 제도는 필요한 제도다. 돈 없어 병 치료도 못하는 일은 없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낸 세금을 다른 사람의 병원비로 쓰는 데 국민도 동의한 것이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25일 쪼들리는 재정을 거론하며 "좀 더 넉넉한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를 돕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복지예산 중 가장 비중(25%)이 큰 의료급여에서 돈이 줄줄 새고 있는데 누가 장관의 제안을 수긍할까. 손을 벌리기 전에 예산 관리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순서다.

김영훈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