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 직배 자제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그동안 우려해 왔던 미국 영화사들의 국내 직접 배급체제가 결국국내 영화계의 큰 반발을 사는 사태를 빚고 있다.
모두들 올림픽에 한 눈을 팔고있는 사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이직배 소식에 국내 영화인들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지난 23일부터 연일 미국의 직배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 앞에서 강력한 항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민족문학 작가회의 등 여러 재야단체까지 가세했다.
미국 영화사가 국내서 직접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지난 1월부터 시행된 개정 영화법에 따른 것이라 일단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그러나 국내 영화인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이유를 두가지 점에서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
첫째는, 개정 영화법이라는게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비교 우위에 있는 제품을 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양보한 것이 바로 미국영화사의 국내직접 영업 허용이었다.
협상당시 우리는 미국 영화사의 한국상륙이 우리 영화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설사 마지못해 그것을 허용하더라도 우리 영화의 자생력과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이후에야 그들의 국내 흥행이 이루어지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같은 기대는 허물어졌다. 공교롭게도 미국 영화의 국내직배소식이 처음 전해진 것은 지난 13일에 있었던 영화인들의 한 모임에서였다.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여배우와 감독을 축하하기 위한 이 모임은 그래서 비분과 한숨으로 끝맺었다.
그동안 소재와 표현의 자유를 잃고 위축될대로 된 한국영화가 이제 막 해외시장을 향해 비상하려는 무렵 날개를 부러뜨린 것 같은 아픔을 그날 참석한 모든 영화인들은 맛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인들이 현행 영화법을 페지하고 새로 영화진흥법을 만들자는 주장은 수긍이 간다.
둘째는, 우리의 영화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미국영화의 양과 질의 문제다. 시장개방 이전에도 미국영화는 국내에 상영되는 전체 외화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했었다.
그러던 것이 개방이후는 거의 70∼80%가 미국영화다.
수입통계를 보면 85년에 30편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 87년에는 99편으로 늘어났다.
그것이 올해는 상반기에만 무려 1백7편이 수입심의를 거쳐 상영을 했거나 또는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수입액수도 85년에 5백90만 달러이던 것이 올 상반기에는 무려 1천2백만 달러나 되었다.
이에 비해 국산영화의 제작편수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85년에 80편 되던 것이 87년에는 36편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같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미국영화의 질은 또한 어떤가. 물론 개중에는 인간의 감성을 순화시키는 좋은 영화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영화는 이미 성과 폭력, 마약 등 부도덕한 소재로 관객의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미국의 국제반 폭력물대책위원회 같은 단체에서도 『할리우드의 영화는 돈벌이에 급급, 무자비한 살육과 무책임한 복수로 관객들의 의식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한 일이있다.
자국관객에도 그렇거늘 하물며 문화와 품속이 다른 우리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따라서 미국영화의 직배는 한국영화의 자생력이 더욱 신장될때까지는 자제하거나 최소한으로 줄여야한다. 그것만이 한국영화와 미국영화를 모두 살리는 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