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거 정책 답습해 세계 유일 0명대 출산율 벗어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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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취임 1년2개월 만에 나왔다. 출산부터 주거까지 골고루 담았다. 고심의 흔적이 더러 엿보인다.

특별고용직의 출산휴가 수당을 지급하고 1세 아동의 의료비를 거의 없애며 주부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보미 대상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육아기 근로시간을 더 단축하고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를 50만원 올렸다. 한 부모 양육비 지원 대상에 14~18세 아동도 포함했다.

이번 대책은 박근혜 정부가 만든 3차 저출산고령사회대책(2016~2020년)을 보완하는 게 목적이어서 그런지 ‘새 정부는 역시 다르네’라고 놀랄 만한 게 눈에 띄지 않는다. 현 정부는 과거 대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여성에게 “애 낳아라”고 강요하지 말고 일·생활 균형을 맞추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했다.

전 정부처럼 출산율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고 ‘아이와 부모의 삶의 질 개선’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평가할 만한 게 아직은 약하다. 과거 것을 한두 발짝 늘린 듯하다. 종합선물세트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전 정부 정책을 비판하더니 그걸 답습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올 1~4월 출산 아동이 지난해보다 9.1% 줄었다. 올해 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진다. 세계 198개국 중 출산율이 0명대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올해 출산 아동이 32만 명으로 줄고, 2022년 이전에 20만 명대로 떨어진다.

문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런데 5일 회의를 주재하지 않았다. 이날 저녁 주거대책 현장을 방문했을 뿐이다. 초저출산 탈출은 대통령의 어젠다다. 셋째 아이 대학 특례입학을 허용하든 뭘 하든 특단의 대책이 없이는 탈출이 불가능하다. 10월에 패러다임 전환 대책을 내겠다는데, 그때는 확실히 다른 걸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