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치고 나니 햇볕이 작열합니다.
햇볕이 하도 뜨거워 땅만 보고 걷습니다.
온통 붉은 바닥에 홀로 떨어진 초록 나뭇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서 뭔가가 꼬물거리고 있습니다.
달팽이입니다.
비 올 때 길을 나섰다가 돌아가지 못했나 봅니다.
달팽이는 바닥이 뜨거운지 쉽사리 나뭇잎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느릿느릿 잎 위에서 빙빙 돌기만 합니다.
한참을 서성이더니 마지못해 잎을 벗어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방향이 숲과 반대입니다.
기껏 기어간 곳이 벽입니다.
더듬이를 뻗어 이리저리 살피더니 발길을 되돌립니다.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숲까지 거리는 족히 30m입니다.
달팽이에겐 까마득한 거리입니다.
게다가 방향을 찾지도 못합니다.
폭염에 그냥 두었다가는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
나뭇잎에 올려 숲속에 놓아주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다른 달팽이를 봤습니다.
벽에 붙은 채였습니다.
껍데기가 마를 대로 말랐습니다.
건드려 보아도 미동도 없습니다.
떼서 살펴보려는데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억지로 뗀 자리에 액체가 말라 굳은 흔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말라 죽은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하여 식수대 근처 물이 흥건한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미동도 안 합니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더듬이가 빠져나왔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살아서 온몸으로 물을 헤치고 다닙니다.
한참 그렇게 노닐다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또 다른 달팽이를 만났습니다.
이 친구도 벽에 붙은 채였습니다.
비 그친 지 이틀째이니 아무래도 죽은 듯 보였습니다.
어제의 기억도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뗐습니다.
그리고는 물이 있는 곳에 올려 두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껍데기 속에서 더듬이가 빠져나왔습니다.
살아있었습니다.
기특했습니다.
비 그친 뒤 숲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처진 달팽이들,
마르고 거칠어지고 생채기 난 껍데기 안에서도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