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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쓰나미 온다···국회·정부 무능이 부른 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관치 금융 논란 종결을 위한 극약처방일까, 무책임한 직무유기일까.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로 한시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의 시한이 지난달 말로 종료되면서 금융권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문제가 많은 기촉법 폐기를 위한 불가피한 수순이라는 옹호론도 있지만, 국회와 금융위가 대책 없이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기촉법의 가장 큰 존재 이유였던 워크아웃은 강도 부도 위기에 몰린 기업을 채권단이 협의해 회생시켜주는 제도다. 물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선행된다는 전제에서다. 워크아웃은 법정관리와 달리 신속한 구조조정이 가능하고, 자율협약과 달리 채권단 75%의 동의만 있으면 추진이 가능해 유용한 기업 구조조정 제도로 기능해왔다.

워크아웃에 법적 근거를 부여해온 기촉법은 외환위기 이후인 2001년 한시법으로 처음 제정된 이후 최근까지 5차례에 걸쳐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그런데 2016년 만들어진 5차 기촉법이 지난달 말 일몰되면서 워크아웃은 법적 근거를 잃게 됐다. 일몰은 한시법의 시한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당장 재무구조가 어려운 기업들이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신용위험등급 C등급인 워크아웃 대상 기업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1차 기촉법이 일몰됐던 2005년 이후의 법적 공백기에 6개 대기업 중 4개 대기업이 자율협약을 추진했다가 실패해 부도 처리됐다. 금융위는 기촉법 공백기 동안 채권금융기관 자율로 기업구조조정 운영협약을 제정해 운용하기로 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임시방편에 불과해 효력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 없는 기촉법 일몰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이 사안의 당사자들인 국회와 금융위는 상대방을 탓하고 있다.
국회는 금융위가 워크아웃 제도에 잠재된 관치 금융 해소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비판한다. 워크아웃 제도와 관련해 빠른 구조조정 진행이라는 장점뿐 아니라 관치 수단으로의 악용 가능성이라는 단점도 지적됐다. 정부가 채권은행들에 입김을 가해 자신의 의도대로 결과를 도출하면서 구조조정을 왜곡시킨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7월 당정 협의 때 기촉법 일몰이 1년도 채 남지 않았으니 개선안을 연구해 대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넋 놓고 있다가 올해 2~3월에서야 ‘기업들이 다 죽게 생겼다’며 연장을 요구해 왔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의 요청으로 6차 기촉법안을 발의했던 같은 당 제윤경 의원도 “2020년 6월 말까지로 2년 연장하는 법안을 내긴 했지만, 부칙에‘자본시장을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 활성화 방안 등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전제를 달았다. 금융위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자본시장을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 활성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기촉법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국회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새로운 기촉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한국은 미국 등과 달리 기업구조조정 관련 시장이나 법적 회생제도가 고도로 발달하지 않아 ‘사적 구조조정’의 기본법인 기촉법이 꼭 필요하다”며 “기촉법이 관치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구조조정 시점을 놓칠 경우 경제 전체가 입게 되는 피해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양측의 무능과 직무유기로 초래된 법적 공백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대안이나 후속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촉법이 사라진 건 큰일”이라며 “이 상황에서 대기업 구조조정 이슈가 발생하면 큰 파문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새로운 방안의 마련이나 후속 입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석·김태윤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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