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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10년짜리 실험…잃으면 안 될 돈 투자해선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2017년이었을까. 올 상반기 암호화폐 시장은 ‘혹시나’ 하는 기대가 늘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결론났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연초 6089억 달러(약 679조원)이던 시장 전체 규모는 지난달 말 2552억 달러(284조원)로 쪼그라들었다. 반년 새 58%가 사라졌다.

[고란의 어쩌다 투자] #브록 피어스 비트코인재단 이사(상)

비트코인 가격은 연초 1만4112달러(현지시간)에서 상반기 마지막 날 6391달러로 54% 하락했다. 낙폭은 국내 시장이 훨씬 더 심각하다. 정부의 규제 강화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지난해 말 한때 50%에 육박했던, 이른바 ‘코리아 프리미엄’(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 ‘김치프리미엄’으로 불렸으나 한국인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서 최근에는 이렇게 바꿔 부른다)이 5% 안팎 수준으로 줄었다. 연초 1927만8000원에 거래된 비트코인은 6개월 만에 715만7000원으로 63% 폭락했다.

올 상반기 시장 부진의 이유는 무엇일까. 비이성적으로 과열된 시장 분위기가 각국 정부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이성을 찾았다. 특히, 국내 시장은 신규 가입이 어려워지면서 일종의 ‘고인물’이 됐다. 기존 투자자의 매물을 받아줄 신규 투자자가 시장에 유입되지 못했다. 게다가 비트코인 가격에 호재라고 봤던 선물 시장 개장이 되레 가격을 끌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거래소 해킹 사고에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불신이 커져 갔다.

그럼에도,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달 초 핀테크 분석업체인 오토노머스넥스트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에서 이뤄진 ICO(Initial Coin Offering, 암호화폐를 이용한 크라우드펀딩) 규모가 벌써 지난해 전체(56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 91억 달러를 기록했다.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펀드, 이른바 크립토펀드는 지난해 말 58개에서 올 상반기 기준으로 225개를 돌파했다.

출처: zimbio.com

출처: zimbio.com

‘이 또한 지나갈 거품’이라기엔 암호화폐 투자 시장의 대세가 개인에서 전통 강호인 기관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가장 유명한 암호화폐 투자회사 가운데 하나인 ‘블록체인 캐피탈’의 공동 창업자 브록 피어스(38ㆍ사진) 역시 비트코인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비트코인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그는, 이더리움 ICO 때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3세대 블록체인으로 불리는 이오스(EOS) 프로젝트를 주도한 블록원의 공동 창업자다. 올 초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암호화폐 부자’ 리스트에서 9위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는 DNA라는 펀드를 조성,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역삼 GS타워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블록체인 오픈포럼’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났다.

한때 2만 달러에 육박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6000달러선으로 떨어졌다. 고점에 들어간 투자자들 손실이 너무 크다.

“비트코인 투자 원칙이 있다. 잃어서는 안 되는 돈을 투자하면 안 된다. 비트코인은 10년짜리 실험이다.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변동성이 너무 크다.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면, 그건 금융상품이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당장 쓸 돈을 비트코인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 이건 투자 원칙이다. 비트코인은 물론이고 당신이 이해 못 하는 그 어떤 자산에도 투자해서는 안 된다.”

이런 질문에 답을 해 줄지 모르겠다. 그래도 묻겠다. 비트코인 가격 전망을 해 달라.

“비트코인 가격은 0이 되거나 혹은 100만 달러가 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이 마이스페이스가 될지 페이스북이 될지 모른다(※마이스페이스는 2003년 나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으로 한때 가입자가 2억 명에 이르렀지만 페이스북에 밀려 사라졌다). 물론, 나는 장기로 보면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인터뷰 장소에는 그에게 ICO 참여를 권유하는 다른 팀들도 함께 자리했다. 인터뷰 후, 그들 일원 중 한 명이 기자에게 “그래서 비트코인은 어떻게 될 거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위와 같은 답을 해 줬더니 그는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며 “그런 유명한 사람들은 전부 다들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고 말했다.)

출처: 코인데스크

출처: 코인데스크

연초 인터뷰에서 5년 내 블록체인이 인터넷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그렇게 믿는가?

“그렇다. 사실 대체(replace)라기 보다는 업그레이드(upgrade)라고 표현하는 게 낫겠다. 인터넷은 망가졌다. 보안에 매우 취약하다. 해커들이나 악의적인 집단들이 이런 약점을 공격한다. 블록체인은 보안이 강하다. 안전한 네트워크 환경을 원한다면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인터넷이 모두 블록체인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믿는다. 5년이면 가능할 것 같다.”

한국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은 장려하지만, 암호화폐 거래나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모집(ICOㆍInitial Coin Offering)은 금지한다는 입장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정부는 규제기관이다. 이론적으로 정부가 할 일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생겨나면, 이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1990년대 인터넷이 도입될 때에도 그랬다. 나는 ICO를 ‘Initial Community Offering’이라고 부른다. 커뮤니티에 오픈 소스에 대한 우선권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인류 역사에 있어 큰 진전이다.”

어떤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올바른 정책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인구나 국가의 규모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 모든 정부는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에 호의적인 국가는 ‘규제 아비트라지(arbitrageㆍ차익거래)’를 통해 돈을 버는 곳이다. 버진아일랜드나 지브롤타ㆍ몰타 등과 같은 국가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말했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도 ”비트코인 투자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폄하했다.

“버핏이 위대한 가치투자자이긴 하지만, 한 번도 기술주 투자를 한 적이 없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 투자의 상당 부분이 은행 섹터에 집중돼 있다. 아마 ‘장부(book)’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을까(※블록체인은 ‘분산원장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이다. 장부는 거래기록을 묶어놓은 일종의 책이다. 은행 업무의 기본은 장부 정리다. 때문에 ‘분산’이 핵심인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라는 은유적 표현이다). 다이먼도 마찬가지다. 은행 업계의 거물이다. 비트코인은 그들(JP모간과 같은 월가의 은행들) 비즈니스의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그는 (은행의 대표로서) 신의성실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JP모건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는 은행이다. 다이먼은 주주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비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기술이 비즈니스(금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충분히 알 만큼 현명하다.”

다이먼 회장이 말하는 블록체인은 프라이빗 블록체인 아닌가. 비트코인 등과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한국 정부도 비슷한 입장이다.

“모든 게 초기 인터넷과 비슷하다. 당시에도 그랬다. 인터넷은 필요 없고 다들 인트라넷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도 그런 게 반복되고 있다. 내가 모든 걸 소유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 퍼블릭 시스템은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주겠지만, 프라이빗 시스템은 일부만이 혜택을 누릴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커뮤니티의 합의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 커뮤니티가 속한 정부가 비트코인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면 비트코인의 가치는 사라지는 것 아니냐?

“되묻겠다. 과연 어떤 정부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왜 금이 5000년 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았을까. 지금의 화폐 시스템은 50년간의 실험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금융 시스템은 100년도 안 됐다. 남미 국가의 경제는 평균 7년마다 망한다. 짐바브웨 달러를 봐라. 대안 화폐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걸 찾지 않을까.”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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