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공원서 마사 박물관까지…88가족들 "원더풀"|과천 승마장 준비 "이상 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까다롭기로 소문난 올림픽 승마경기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준비되고 있어 각국선수단으로부터 찬사를 받고있다. 승마는 장애물 비월 결승전이 폐회식 전에 메인스타디움에서 열릴 정도로 올림픽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귀족적인 경기. 이처럼 유별난 경기가 한국에서 열리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서울올림픽 개최가 이미 확정된 뒤인 지난 84년에 열린 세계연맹총회의 결정사항은 한국의 모든 승마계 인사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마필 전염병에 오염된 아시아지역의 국가이므로 모든 마필에 대한 혈청검사를 거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대회를 개최할 수 없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한국 측은 별도리 없이 85년에 제주도 조랑말까지 포함한 국내 전 마필에 대해 혈청검사를 실시,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국제승마연맹(FEI)에 통고했다.
이후로도 매년 한차례씩 샘플링방식에 의한 검사를 실시해 오고 있다.
승마가 구미인 중심의 경기라는 것은 검역절차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영국·독일·미국 등 구미의 말은 과천검역 마사에서 3일간만 머무르게 되어있는 반면 아시아지역의 마필은 멀리 김포 검역소에서 1주일간을 보내야하고 아프리카 지역 마필은 아예 부산 검역소에 들르도록 되어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일본 마필만이 유일하게 김포에서 1주일간 검역절차를 받는 특별 대우(?)를 받았고 한국은 해외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의 마필이 다행히(?)도 유럽산 이어서 구미 마필과 함께 과천검역소로 직행할 수 있었다.
개최지에 대한 불안과 염려는 각국의 이상과민 현상으로도 나타났다.
일부국가에서는 사료를 직접 공수해 먹이기로 했으며 영국은 사료로 쓸 풀의 속성재배기를 들여오는가 하면 영국·미국 등에서는 정수기까지 가지고 왔던 것이라.
그러나 이 같은 불유쾌한 현상은 각국선수단이 속속 내한, 과천 올림픽 승마공원 내의 각종 현대식시설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이들은 쾌적한 주위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고있는 각 경기장시설 외에도 실내마장·실내마풀장, 오락실·독서실·샤워실이 갖춰진 선수 휴게실, 식당·은행·우체국·매점이 있는 서비스센터, 편리한 숙소 등의 시설에 대해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수의사·장제사·마부 등 수행원을 위한 2개 동의 숙소는 아늑하고 편리한 시설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친절한 서비스로 인기가 높다.
소련·서독의 일부 임원은 이곳의 훌륭한 시설에 매료된 나머지 자신들도 수행원 숙소에서 투숙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진품경을 연출, 한호석 국제부장 등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소련선수단은 입주 첫날인 지난 6일 밤 11시 과천에 도착했는데 성심 성의껏 자신들을 도와준 여대생자원봉사자들의 정성에 감격, 기념페넌트·배지 등으로 답례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 등 북구 제국의 임원·수행원들도 각종시설에 한결 같이 찬사를 보내면서 자원봉사자들을 상대로 한국의 승마인구·역사 등에 대해 질문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84년 LA올림픽 당시 종합마술경기의 운영책임자였고 현재 FEI의 추천으로 대회운영본부 자문위원으로 있는 미국인「잭슨」여사(49)는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 이제 경기만이 남았다』며 준비상태에 합격점을 주었다.
이번 대회는 국내에서 처음 치러지는 무게 있는 대회인 만큼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의 역할과 비중이 매우 큰 것이 특징.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왕복 항공료와 체재비를 받고 한국을 찾은 45명의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은 심판 및 경기진행 보조와 기록보조 등의 중요한 일을 맡았다.
이밖에 5명은 순수한 자기부담으로 방한, 대회준비를 돕고 있다.
마사 관리인으로 있는 「수전·스티븐스」여사는 그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대회운영본부에 보고, 즉시 해결토록 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상원 사무총장은 『개장과 더불어 대학생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빠져나가 크게 걱정했는데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며 『이제는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도 의사가 통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고 있다』고 자랑했다.
숙소관리는 대학 주최측이 가장 신경을 쓰는 문제중 하나.
다양한 언어권의 30여개국 수행원들을 위해 주로 주부·여대생들인 32명의 자원봉사자를 배치하는 한편 외곽경비는 14명의 군 요원에게 맡기고 있다.
관계자들은 아시안게임 때의 불미스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청소나 방 정리 등을 위해 부득이 방안에 들어가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군 요원을 포함한 네 사람이 한조를 이루도록 각별히 주지시키고 있다.
이곳 자원봉사자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패션디자이너 서정륜씨(30).
한국대표로 마장마술 경기에 출전하는 서정균 선수(27)의 누나이기도 한 서씨는 아직 미혼으로 능숙한 영어솜씨와 미모를 무기(?)로 해서 갖가지 민원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패션스쿨을 마치고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이달초 승마경기 자원봉사 단장인 어머니 박민선씨(58)와 역시 승마경기 자원봉사자인 언니 이숙씨(36)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귀국한 승마광 이기도 하다.
숙소관리담당관 박정진씨는 『처음에는 언어장애로 큰애를 먹었지만 이제는 모두 한 식구처럼 정이 들었다』며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소련수행원들은 「열쇠」 「백사」(104호) 등 꼭 필요한 말은 한국어로 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승마경기본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붙여져 왔던 한국의 유구한 마 문화를 온 세계에 알리기 위해 국내 최초의 말 박물관인 마사 박물관을 지난 13일 개관했다.
이 박물관에는 선사시대로부터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조시대·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 3백20점이 전시돼 한국 고유의 수준 높은 마 문화를 소개함으로서 각국선수·임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